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판사→국회의원→변호사…그에게 법원이란
10년전 ‘촛불재판’ 대법관 개입
전국판사회의 주도 개선 요구
의원 거치며 관계에 대한 고민
“신뢰 회복에 재판부 독립 중요”

판사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변호사로.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파문 당시 전국 판사회의를 주도했던 서기호(48·사법연수원 29기) 변호사의 법조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몸담은 곳이 달라질 때면 법원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법원에 있을 땐 ‘그래도 공정한 곳’이라고 자긍심을 가졌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행정 관료처럼 로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엘리트 판사’들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다. 변호사가 된 요즘 그가 바라본 법대는 한없이 높기만 하다. 지난 10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서 변호사가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최근 그를 서울 서초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법 판사 △19대 국회의원 △2013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정의당 원내 대변인 △대한변호사협회 선정 ‘최우수 국회의원상’(2016)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 뒷조사를 벌였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건 서 변호사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예견됐던 일이었는데,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아서 곪아 터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소문으로만, 막연히 짐작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제라도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죠.” ‘판사가 관료화 되고 있다’는 징후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절감했다. 그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활동할 때 봤던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확실한 ‘갑을관계’를 설정하고 의원들을 깍듯이 대했다. 법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예산과 법률안 심의권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상대하다가 다시 일선 법원으로 복귀해 요직을 맡고, 법원장이 되고. 과연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재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특히 2015년 상고법원 추진에 ‘올인’ 하는 판사들을 보고 법원 관료화가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그동안 법원장이 보직을 정하던 ‘사무분담’을 판사들의 자율적인 회의에 맡기기로 했다. 서 변호사가 9년 전 단독판사회의를 주도하며 공개적으로 개선을 요구했던 내용이 이제 실현된 셈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이 재판장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는 식으로 사건에 개입했어요.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부터는 판사에게 어떤 보직을 맡길지, 사건을 어느 부에 배당할지와 같은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간접적인 개입을 하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매년 2월 법원 정기인사를 보세요. 대법원장과 법원장 의중을 잘 반영할 만한 판사가 주요 재판부 재판장을 맡잖아요.”

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사무분담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변화는 재판부 독립성을 보장하지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해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서 변호사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이 재판 결과를 좀 더 공정하다고 신뢰하게 될 겁니다. 민주주의는 많은 비용을 치루면서 성장한다는 것과 맥락이 비슷해요.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것만이 효율은 아니에요. 당사자가 재판을 공정하다고 믿고 승복하면 그것도 효율이죠.”

변호사가 된 그는 더욱 법원의 신뢰 확보 노력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법원은 일반 회사 조직과는 달라야죠.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의 영향을 받아 사건이 처리된다고 사람들이 여기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자꾸 ‘윗선’이나 ‘배후’에 줄을 대려고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재판부 독립 없이는 전관예우 문제도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서 변호사는 판사회의를 주도한 직후 2009~2011년 인사평가가 나빠지면서 결국 재임용되지 못하고 법복을 벗었다. 억울했다. “판사도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변호사 업무를 1년 반 정도 하다 보니 이런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의뢰인들 중 상당수는 재임용 탈락 당시의 ‘판사 서기호’ 이미지를 떠올리고 찾아온다. 재판에 지고 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다. 한 번 졌기 때문에 이기기가 어려운 반면, 소위 말하는 ‘돈 되는 사건’은 많지 않다. “가끔은 제가 변호사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힘이 빠질 때도 있어요. 제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반골’ 성격도 아니에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저라면 하소연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인데,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죠.”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