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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대선에 이어 올림픽까지…반복되는 수어 논란 왜?
-수어 통역없이 간단한 자막만 제공된 개회식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비장애인 위주 행사”
-조직위 “IOC와 논의 필요…여러 방안 검토”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2급 청각장애인 A 씨는 지난 9일 청각장애인 4명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러 갔다. 화려한 개막 공연과 선수단 입장이 이어졌지만 A 씨 일행은 공연의 구체적인 의미나 선수단 입장에 대한 설명을 얻을 수 없어 당황했다. 전광판을 통해 간단한 자막만 보여질 뿐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던 것.

A 씨는 “아나운서의 설명이나 배경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개막식 내내 답답했다”며 “국제 행사인 만큼 당연히 수어 통역이 있을 줄 알았다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사진=지난 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당시 전광판에 수어 통역 화면이 없는 모습.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제공]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지만 정작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은 충분하게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 당시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대회 조직위원회와 이를 관리ㆍ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를, 차별 행위로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이들은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청각장애인 참석은 당연히 예상했어야 했지만 조직위원회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현장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아 장애인을 차별했다”며 “한국수화언어법과 장애인복지법의 주무 부처인 문체부와 복지부도 조직위에 수어 통역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 한국수화언어법 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평창올림픽 폐막식과 패럴림픽 개ㆍ폐막식에는 전광판 수어 통역이 제공되도록 인권위가 입장을 표명해 달라”면서 “문체부와 복지부에는 이 같은 차별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해 달라”고 인권위에 요구했다.

이 단체는 앞서 지난 13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한 지상파 방송사가 수어 통역과 화면해설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며 방송사들과 문체부ㆍ복지부ㆍ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하기도 했다. 당시 MBC와 SBS엔 수어 통역이 전혀 없었고 KBS는 IOC 위원장 등의 연설 장면만 수어 통역했다는 것이다.

대형 행사의 수어 통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에 앞서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 5명의 토론 내용을 수어로 통역하는 사람이 1명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는 등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장애인단체들은 이 같이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위반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제재 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이 똑같이 올림픽을 즐기기 위해선 수어 통역과 자막이 동시에 필요한데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큰 행사가 열리면 현장에 수어 통역가를 배치하는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오는 25일 열릴 폐회식에 수어 통역가를 배치하는 것과 관련해 조직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우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개회식 당시 행사 전 과정을 통역하는 것은 제작 여건상 쉽지 않았다”며 “폐회식 때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여부에 대해선 IOC 측과 논의하고 여러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 청각장애인 수는 지난 2016년 말 기준 23만5000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등록장애인 250만여 명 가운데 약 10%에 달한다. 이는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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