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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무인시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컵라면, 샌드위치, 콜라….

매대에 비치된 상품만 보면 평범한 편의점처럼 보인다. 그런데 매장에 사람 하나 없다. 입구에 설치된 신용카드 출입 단말기에 신용카드를 찍으면 그제야 문이 열린다. 필요한 물건을 고른 뒤 셀프 계산대에서 상품 바코드를 스캔하면 화면에 가격이 뜬다. 할인카드와 결제할 신용카드를 긁으면 계산원 도움 없이도 손쉽게 계산을 마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문을 연 24시간 무인(無人) 편의점 풍경이다. 대면 판매가 원칙인 주류 등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물품은 모두 취급하고, 셀프 결제도 손쉬운 편이라 자주 드나든다고 이용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같은 무인 점포가 최근 국내 유통가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인 점포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으로 아르바이트생 감원을 겨냥한 유통가 흐름으로 보는 의견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유통업계의 시대적 추세에 따른 대세라는 견해로 나뉜다. 어찌됐든 기계문명 시대가 불러올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로 양분된 전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든, 글로벌 추세든 유통업계의 무인화 바람은 거세지고 있다.

편의점 중에선 세븐일레븐이 첫 주자로 나섰다. 지난해 5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무인형 편의점 ‘시그니처’를 선보인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중구 롯데손해보험빌딩에 2호점을 열었다. 신세계그룹의 편의점 체인 이마트24는 지난해 6월 무인 점포를 처음 선보인 뒤 현재 6곳까지 늘렸다. 씨유(CU)는 고객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상품 스캔부터 결제까지 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인 ‘CU 바이셀프’(Buy-Self)를 선보였다.

편의점 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업계에서도 무인 주문기기를 설치하는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 맥도날드는 전국 430개 매장 중 200여곳에 무인 주문기기를 설치했다. 바쁜 점심시간엔 기기를 통해서만 주문을 받는 매장도 있다.

확실한 것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유통가의 무인화 도입 바람은 더욱 선명한 색깔을 띨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만난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올들어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면서 무인 시스템 도입을 문의하는 점주들이 늘고있다고 귀띔했다. 롯데리아에 따르면 무인 주문기 1대당 약 1.5명의 인건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무인 주문기 구입 부담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인건비 절감, 점포 회전율 등의 개선이 기대된다”고 했다. 무인화 바람이 강해질수록 일자리 감소라는 일각의 비판과 함께 효율성 문제가 계속 도마위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얘기만은 아니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에선 이미 무인 점포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5대 편의점 업체는 2025년까지 전국 5만개 점포에 무인 시스템을 설치할 계획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Pepper)’는 이미 호텔 등에서 안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알리페이 등 휴대폰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한 무인편의점이 확산되는 추세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도 무인화 열풍에 가세했다. 아마존은 지난달 미국 시애틀에 무인 식료품점 ‘아마존 고’를 정식 오픈했다.

이를 보면 무인화 바람은 국경을 불문하고 유통가에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된 것이다.

무인화가 점령한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빼앗은 일자리 만큼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논란을 무인화 역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은 AI 발달로 2020년까지 710만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만 현재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대거 창출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동시에 나온다.

여기에 시사점이 있다. 무인점포 확산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일자리 축소 등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전략적인 사고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유통업계의 무인화 바람은 그런 ‘전략적 사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민간기업으로서의 한계가 있을테지만, 무인화 바람이 낳을 역기능과 순기능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다. 정부의 리더십과 기업의 한발 앞선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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