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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외교탐구] 평창모멘텀과 韓ㆍ北ㆍ美 ‘스토리텔링’ 삼국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스포츠외교의 핵심은 역시 ‘스토리텔링’이다. 1980년대 구소련과 미국의 주도하로 올림픽은 이념의 선전장이 되는가 하면,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은 빈민국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한강의 기적’라는 국가브랜드를 세상에 알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남북한, 그리고 미국의 ‘스토리텔링’ 외교전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은 ‘핵 있는 평화’를, 우리 정부는 ‘평화올림픽’을,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와 한미일 대북공조’를 홍보했다.

▶ ‘김여정’ 카드로 존재감 발휘한 北…‘남북 v. 미일’ 구도 짰다= 백두혈통의 사상 첫 방남카드로 북한은 ‘핵 있는 평화’ 공세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 소식을 전문가들은 “북한의 분명한 남북관계 개선의지”,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의지”라고 해석했다. 김 제1부부장의 방남만으로도 평창올림픽은 ‘평화의 장’이 돼 있었다.

비핵화 논의없는 남북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국제사회가 만들어놓은 대북제재의 장벽도 남북 해빙무드와 함께 낮아졌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석을 위해 미국 단독제재와 5ㆍ24조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등 주요 대북제재들을 유예시키는 선례를 남겼다. 당시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최휘 북한 체육지도위원장의 제재예외를 요청하면서 북측 대표단의 방남이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평화 훼방꾼’은 미국과 일본이 됐다. 북측의 ‘핵 있는 평화’ 스토리텔링이 먹힌 탓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이슈화하고자 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불참하는 등 강경입장을 보였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도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언급하는 등 비핵화 논의없는 남북대화를 경계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펜스 부통령의 행동을 ‘외교적 결례’라며 맹비난했다. 미 언론도 펜스 부통령의 행동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절반의 성공, 韓…비핵화 없는 ‘평화올림픽’= 문재인 정부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평창올림픽은 ‘평화의 올림픽’이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의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에 대해 정부는 ‘전쟁 문턱까지 갔던 한반도가 남북대화 계기 평화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올림픽’이라는 스토리텔링은 문재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의 ‘북미 탐색적 대화’ 발언을 이끄어내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펜스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에 문 대통령과의 회동내용을 밝히며 북한이 원하면 전제조건없는 탐색적인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백악관과 미 국무부 모두 “북한이 원하면 대화할 수 있다”며 탐색적 대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가 문제다. 당장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지 않은 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당장 문재인 정부의 ‘출구론’(대화→핵동결ㆍ한미훈련 축소→핵폐기)에 동조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북한에 대한 유례없는 제재를 예고했다. 미국의 주요 정보기관 수장들은 한국이 북한의 ‘미소외교’에 선동당했다며 남북대화에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외교전문가인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은 CNN방송 기고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 핵ㆍ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이른바 ‘쌍중단’에 합의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순진하다는, 미국의 문 대통령에 대한 최악의 두려움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자 미 국방부의 한국 정부 지원도 희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미균열론 뒷수습만…스포트라이트 못받은 ‘북한 인권문제’ = 미국의 ‘북한 인권문제’ 스토리텔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기간동안 탈북자들과 접견하고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하며 북측의 선전활동을 저지하려 했다. 고(故) 오토 웜비어의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를 방한길에 동행하기까지 했다. 오토 웜비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미국에 돌아온 지 엿새만에 사망했다. 펜스 부통령이 북한의 인권실태를 고발하고, 천안함 사태에서 드러난 잔혹성을 지적해도 세간의 관심을 받진 못했다. 김여정은 가는 곳마다 관심을 받았지만,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개회식 전 리셉션에 5분동안만 회동하고 나서야 관심을 받았다.

‘한미일 대북공조’라는 스토리텔링도 실패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평창올림픽 개회식 전 리셉션에서 지각함으로써 한창 물오른 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펜스 부통령이 남북단일팀이 개회식에서 입장할 때 기립하지 않는 것을 두고 ‘외교결례’라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전 미 국무부 한일담당관 민타로 오바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의 손안에 놀았다”며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과 거리를 두고, 남북한 관게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깎아내리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방한 전 일본에서도,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만을 고집했던 펜스 부통령은 이후 귀국길에 돌연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전문가는 “미측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었다면 평창올림픽 계기 했을 것”이라며 “북한의의도대로 당장 한미 간 균열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발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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