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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농산편(하)]정선 고랭지 배추밭 사과가 주인이 되다
임계면 농민의 80% 사과나무 심어
사과 산지 지속 감소 세기말 강원 일부 산간만 재배가능


‘사과=대구’라는 공식은 사실 오래 전에 깨졌다. 능금 아가씨 선발대회까지 열렸던 대구는 더이상 사과의 주산지가 아니다. 평년 기온이 오르면서 대구에서 경상북도 문경ㆍ안동 등지로 북상한 사과는 이제 기온이 낮아 재배가 어려웠던 강원도까지 올라왔다.

실제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는 사과 농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선군 임계면에 도착한 후 차로 20여분 달리는 동안 ‘사과농원’ 푯말들을 쉽게 볼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은 불과 10년 전만해도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사과를 재배 중이다. 정선에서 마주한 사과는 한반도 내 사과 재배지의 지도가 빠르게 변화됨을 실감나게 했다. 사과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농산물이다. 


서늘한 기후 찾는 사과, 고랭지 채소 대신 강원도 정착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날, 새빨간 사과를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서 만났다. 강추위가 심한 강원도 정선이라는 사실이 생소했지만, 한 사과농원의 창고에 들어선 순간 코를 자극한 향긋한 향기가 품질을 입증했다. 창고를 안내해준 이는 4년 전부터 정선 임계면에서 ‘형래사과농원’를 운영중인 김형래(63) 농민. 김 씨는 수확한 사과가 쌓여있는 창고를 보여줬다. 2900평의 농원에서 지난해 수확한 양은 홍로사과 300박스, 미얀마사과가 600박스 정도다. 농협에 출하한 후 개인판매용으로 남겨둔 것들이라고 했다.

몇년 전 이곳으로 귀농한 김씨에게 고랭지 채소 대신 사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김 씨는 “해발이 높은 이곳은 원래 무ㆍ배추ㆍ감자 등 고랭지 채소를 하던 곳이었지만 기후가 변하면서 병충해 등의 문제가 심각해 그해마다 생산량과 가격변동이 심했다”고 했다. 해발 800m에 자리잡은 고랭지 배추밭, 하지만 이곳 농민들은 배추 재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농민은 “배추 속이 제대로 차지 못해 썩거나, 강한 햇볕에 잎사귀마저 배추 색깔이 안나온다”고 했다. 이때문에매년 농민들의 마음은 살얼음판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고랭치 채소에서 사과로 재배 품종을 바꾸는 농민들은 더욱 많아졌다. 김 씨는 “임계 농민의 약 80%가 사과로 바꿨다”고 전했다. 김 씨의 농원을 벗어나와도 임계면 거리는 사과 농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식당에서도 주민들의 주된 이야기거리는 사과였다. 정선에서 자란 사과의 맛은 어떨까. 김 씨는 “임계면이 사과재배의 최적지인 해발 570m, 큰 일교차, 풍부한 일조량을 갖추고 있어 품질이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선 사과는 아삭한 식감과 새빨간 색감, 새콤함과 달콤한 맛이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 사과는 당도가 남쪽 지역보다 평균 1~2브릭스(당도를 나타내는 단위) 높다.

소비자 반응도 좋다. 지난해 이마트는 임계면 사과를 전점에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김 씨는 “지난 추석 때는 농민들이 팔고 남은 사과가 없어서 임계농협쪽에 납품을 다 못했을 정도”라고 했다. 임계 사과의 인기는 사과가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대구 명성이 이전과 같지 않은 것도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사과품질에 영향을 미친 것이 중요 요인이 됐다. 권순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은 “기온이 올라가면 사과의 빨간 색깔이 나오지 않고, 경도(단단한 정도)와 산도(신맛)가 낮아져 맛이 싱거워지고 모양도 납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과생산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에 재배적지를 따라 재배자가 북쪽으로 이동하거나 농가들이 작목 전환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임계면 역시 타지역에서 사과재배를 하다가 이곳으로 이주한 농민들이 있었다. 


빠르게 바뀌는 한반도 사과 재배지 지도

임계면 대부분의 농민들이 사과를 재배하고 있지만 이 지역의 사과 역사는 매우 짧다. 불과 10년 전에 시작됐던 정선군 사과 농가는 현재 263개로 늘어났으며, 본격 판매된 시점은 불과 3~4년 전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화된 사과 재배지의 변화에 대해 정선군에서는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정선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정선군에서 사과재배 기술 지도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정선군 농업기술센터의 원종호(43) 농촌지도사는 “정선군이 최근 주력 농산물로 사과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그는 “정선군의 사과 재배지는 2007년 3헥타르 규모로 시작해 2017년에는 192헥타르까지 증가했다”며 “현재 정선군은 시책사업으로 사과를 선정해 오는 2022년까지 총 300헥타르 면적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지원도 늘려가고 있다. 정선군은 시설 설치 및 조성 비용의 50%를 군 예산으로 지원해왔으며, 최근에는 정선군만의 새로운 신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홍금’을 시범사업으로 생산ㆍ판매할 계획이다.

사과의 주 생산지 변화는 통계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1762톤에 불과했던 강원도의 사과 생산량은 2016년 5775톤으로 10년 사이 3.2배 증가했다. 반면 주산지인 경북지역이 전국 전체 사과재배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4.8%에서 2016년에는 60.6%로 줄었다. 경북지역에서도 북부지역인 영주시, 안동시 등이 지난해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대구시와 인접한 경산시는 최하위권이다. 평야지역인 경기도와 충청남도 역시 감소추세다. 


재배 가능지, 2020년 36%→2050년 10.5%→2090년 0.9%…

기후변화가 이대로 이어진다면 사과 재배지는 어떻게 변할까. 미래 사과 재배지를 예측한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사과의 경우 과거 30년 간(1981~2010년) 사과의 총재배 가능지(재배적지+가능지)는 국토 면적의 68.7%였으나 오는 2020년대에는 36%로 급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2050년대에는 10.5%, 2090년대에는 0.9%로 대폭 줄어들어 21세기 말에는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만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포도, 배 등의 전통 과일도 재배적지가 줄어들어 50~70년쯤 지나면 이같은 전통과일은 더이상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한빛나라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 실장은 “기후변화로 전통 농산물의 생산량과 품질 하락의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하며 “농업분야는 예상보다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으므로 경각심을 가지고 적절한 대책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선=육성연 기자/gorgeo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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