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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보약 부럽지 않은 동지 팥죽 한 그릇--라승용 농촌진흥청 청장
이틀 후면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 동지(冬至)다. 해마다 이 맘 때면 거르지 않고 찾게 되는 시식(時食)이 있다. 바로 팥죽이다. 보기에도 맛깔 나는 붉은 빛깔에 둥글게 빚은 새알심이 말갛게 떠오르는 팥죽 한 그릇이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따스해지며 온기가 돈다. 나이 수만큼 새알심을 먹어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어른들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어 하나라도 놓칠 새라 숟가락으로 한 알 두 알 세어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듣던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이 일 년 열두 달 보약보다 낫다’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 못할 만큼 팥죽은 달고 든든했다.

붉은 색의 팥 음식을 나누는 것은 액운이나 질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팥은 영양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죽이나 떡, 칼국수 등 입맛대로 골라 가며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든든한 별미로 손색이 없다. 이 중 팥죽하면 흔히 겨울철 별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조상들은 한 여름 삼복에도 복죽(伏粥)이라고 불리는 팥죽을 쑤어 건강한 여름나기를 소원했다.

이처럼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팥은 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구성돼 있고 비타민A, 비타민B1ㆍ B2, 칼륨, 칼슘, 인, 철, 섬유질 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곡류 중에서 비타민 B1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데 이는 신체에 활력을 주고,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식이섬유도 풍부해 변비 예방에도 좋고, 몸 속 나트륨을 배출하는 칼륨성분이 많아 붓기를 빼고 노폐물을 제거하는데도 탁월하다. 팥에는 사포닌 성분도 많이 들어 있어 당뇨, 심장질환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팥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 쓰임새도 기존의 팥 앙금, 팥죽, 팥고물 등 식재료 위주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건강식품은 물론 다이어트 제품 등으로도 개발되고 있는 추세다. 이밖에도 천연 염색소재, 아토피 치료제뿐만 아니라, 미백효과가 뛰어나 천연비누, 친환경화장품 등 미용제품으로 까지 용도도 다양해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매년 늘어나는 팥의 수요에 맞춰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수량이 많고 기계화적성이 우수한 ‘아라리’ ,‘홍언’, ‘서나’, ‘홍진’ 품종을 개발하여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 중 맛과 색이 좋은 ‘아라리’ 품종은 떡 고물이나 빵에 들어가는 소, 양갱, 빙수 등 팥을 이용한 모든 먹거리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효자품종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팥은 붉다’라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색상의 팥 가공제품을 만드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검구슬’과 ‘흰나래’ 품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검구슬’ 품종은 껍질이 검정색을 띠며 팥죽이나 팥 칼국수로 만들어 먹으면 자극적이지 않게 끌어당기는 단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건강기능성까지 갖춘 팔방미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이 기존 붉은 팥 품종에 비해 35% 정도 높다.

‘흰나래’ 품종은 껍질이 황백색을 띠고 있어 흰 앙금이나 흰 고물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가공단계에서 일일이 붉은색의 껍질을 제거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고 껍질 째 흰 팥죽과 흰 앙금을 제조하기가 수월해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밝음이 시작되는 상서로운 날’인 동지. 빛깔이 곱고 어디 하나 상한데 없이 매끄러운 팥만 골라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여내야 제 맛인 팥죽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동지 즈음에 팥죽 한 그릇 받아들고 최선을 다해 달려온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여유 있게 이웃과 따뜻한 팥죽 한 그릇 나누며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는 모습은 언제보아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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