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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금융사 지배구조 개혁할 관치의 검(劍)은
열자(列子)에는 은(殷)나라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 쓴 보검 세 자루 이야기가 전한다.

우선 함광(含光)이다. 이 칼은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 없다. 휘둘러도 아무 것도 안든 느낌이고 칼날로 대어 보아도 마치 날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베인 상대방도 베인 느낌을 못 받는다.

승영(承影)은 새벽녘 또는 황혼 녘에 북쪽을 향하여 칼을 겨누면 형태는 모르지만 뭔가가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베이면 조그마한 소리가 나지만 베인 상대방은 아무 고통도 없다.

소련(宵練)은 칼날이 태양빛으로 되어 있는 듯 낮에는 그림자가 보이지만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밤에는 칼날이 빛을 반사하지만 형태는 알 수 없다. 물체를 자르면 손목으로 느낄 수 있고 소리도 나지만 베인 자국에 상처도 안 생긴다. 베인 상대방은 통증은 느끼지만 칼날에는 전혀 피가 안 묻는다고 한다.

불교 선종(禪宗) 가운데서도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임제종(臨濟宗)의 벽암록(碧巖錄)에는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이 등장한다. 은의 3보검도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검’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가 논란이다. 금융당국은 ‘상호추천’과 이를 통한 ‘셀프연임’ 구조를 지적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사외이사를 뽑고, 그 사외이사들이 다시 CEO의 연임을 지지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논리다. 금융권은 민간기업 인사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 위반 사항이 아닌데, 굳이 개별회사의 CEO 선임과정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중의 돈을 다루는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관(官)의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규제로 영업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는 국내 금융규제체계는 ‘관치(官治)’에 최적화 돼 있다. 대신 금융권은 관의 우산 아래에서 과점구조를 유지하며 비교적 안전한 영업으로 돈을 벌어왔다.

문제는 제도적 원칙을 위한 관치가 아니라 권력의지를 반영한 관치다. 소비자 권익보호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서는 관치의 검을 휘둘러야 한다. 상식에 어긋나는 지배구조는 소비자 보다 권력지향의 경영을 부추겨 금융시스템을 부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감독당국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권력에 길들이기 위한 칼은 안 된다. 전자가 ‘활인검’이라면 후자는 ‘살인검’일 수 있다.

잘못된 지배구조는 법과 제도로 바꾸면 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애매한 부분을 보완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관의 ‘검법’이다. 하지만 경영진에 압력을 가하고 정부의 철학 공유를 핑계로 권력 측근을 민간기업에 내려 보내는 것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더 후퇴시키는 ‘칼질’이다. 금융회사도 이사회 구성방법에 있어 결점이나 오류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쳐야 한다. 능력있는 경영인이 잘못된 시스템으로 선임돼 그 적합성을 의심받아서는 안된다.

관치의 검을 고른다면 ‘함광’이면 제일 좋겠지만, 이미 드러난 문제가 적지 않으니 지금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사외이사 제도 등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니 ‘승영’으로도 부족할 듯싶다. 고통은 남지만 그래도 피를 보지는 않을 ‘소련’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ky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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