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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욜로와 짠내 사이, 당신의 가계는…
올해를 관통한 문화 키워드 중 ‘욜로’와 ‘짠 내’가 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를 뜻하는 것으로 ‘단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주창하는 트렌드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 본질적인 삶이 아니라는 욜로의 주창은, ‘지금 즐길 것을 지금 즐기자’는 방식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었다.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더라도 값비싼 후식을 꼭 챙기고, 몇 달 간 곤궁하게 살더라도 단 며칠간의 화려한(?) 여행을 꿈꾸는 이른바 ‘스몰 럭셔리’ 같은 소비 트렌드의 밑바탕에는 욜로가 가진 정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당장 즐길 걸 즐기고, 나아가 사고 싶은 걸 사며,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욜로의 소비 트렌드(물론 그것은 오독된 면이 많지만)는 그 반작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것이 이른바 ‘짠 내’ 나는 삶을 다시금 주창하는 목소리들이다. <김생민의 영수증> 같은 프로그램이 갑자기 화제가 되고, 그 주인공인 김생민이 인생 역전의 캐릭터를 가지게 된 건 바로 이 욜로의 반작용으로서 ‘짠 내’ 나는 삶을 그가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의 영수증을 들여다보고 그 소비 패턴이 갖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그러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는 삶이야말로 괜찮은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걸 역설한다.

대중들이 김생민에게 열광하게 된 건, 사실 저축이 가져오는 미래에 대한 비전도 비전이지만 당장 욜로가 주창하는 소비 트렌드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욜로를 말하며 연휴라도 생기면 해외여행을 나가는 인파로 인천공항이 가득 메워지는 광경을 보면서 그렇게 쉽사리 소비하지 못하는 처지를 가진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김생민 같은 ‘통장요정’이 나서서 다 그렇게 소비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아끼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 가치 있다고 말해주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욜로’에서 파생된 소비 트렌드나 그 반작용으로 대두된 ‘짠 내’ 나는 삶이나 어찌 보면 모두 같은 현실에서 비롯된 양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둘 다 팍팍한 경제 현실이 그 밑에는 깔려 있다. 욜로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제 아무리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살며 노력해도 결국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현실 때문이다. 실제로 집 한 채를 사기 위해 한 평생을 은행 빚을 갚으며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한 평생을 집에 저당 잡히느니 차라리 집을 포기하고 현재를 소비하는 삶을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짠 내’ 나는 삶 역시 그나마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려면 영수증을 펼쳐놓고 뭘 사고 뭘 먹었는지까지 시시콜콜 살펴야 하는 퍽퍽한 서민들의 삶이 담겨져 있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쓸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이런 미래의 막연한 희망이나마 살아가게 하는 위로가 될 수 있다.

어느 덧 12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마당에 올해를 관통한 두 개의 문화 키워드, ‘욜로’와 ‘짠 내’를 끄집어내는 마음은 그래서 착잡하다. 거기에는 현재의 노력이 미래의 성과로 이어지는 그 고리가 이제는 끊겨버려 그것을 어떻게든 문화적으로 극복해보려는 ‘정신승리’의 안간힘 같은 게 느껴진다. 모쪼록 내년에는 ‘당신의 가계는 안녕하십니까?’하고 물을 수밖에 없는 이런 희망 없는 시대의 안간힘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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