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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식경계 허문 한식당…그 위로 미쉐린 별이 떴다
고정관념 벗어난 한식으로 승부
오픈 1년 반만에 미쉐린가이드 선정‘주옥’신창호 셰프
“어머니께 드리는 마음으로 정직한 음식 내놓겠다”

겨울을 알리는 비가 기세좋게 쏟아졌다. ‘핫플레이스’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던 시절, 그 때의 ‘트렌드세터’들을 불러모은 곳은 서울 ‘청담동’이었다. 번화가를 조금 비켜난 뒷골목에 ‘주옥’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간판에 적힌 ‘한글’은 매서운 빗줄기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소박하고 정갈하다.

지난해 5월 주옥은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청담동 말고는 달리 아는 데도 없고, 이 골목이 임대료가 저렴했다”며 터를 잡은 이유를 밝혔다. 신창호(39) 셰프는 청담동이 한창 ‘붐’일 때 이 곳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한식당 주옥 신창호 셰프는 자신에게 “요리는 평생 직장”이라며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직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직접 만든 발효식초의 향을 맡고 있는 신창호 셰프.

레스토랑은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시간인 오후 3시경에도 분주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손님 연령대도 다양하다. “점심엔 여자 손님들이 대다수예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눈에 띈다. 그새 소문이 퍼졌나 싶지만, ‘주옥’은 사실 등장부터 주목받은 곳이었다. 오픈 이후 이름을 알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식계의 신흥강자’로 불렸다. 그러니 시간문제였다. 결국 주옥은 오픈 1년 6개월 만에 ‘미쉐린가이드 서울 2018’에서 별을 받았다. 아담한 레스토랑 안, 발효식초가 한 쪽 벽면을 채웠다. 식재료를 전시한 테이블 위로 미쉐린 트로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따끈따끈하죠? (웃음)”

식당 안은 마지막 코스를 향해가는 손님들의 기분 좋은 식사 소리가 가득 찼다. 직접 담근 식초 테스트를 마친 신창호 셰프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8일, 미쉐린 가이드 발표 이틀 후였다. 

신창호 셰프의 장모님이 직접 키워 짠 들기름으로 만든 요리인 ‘들기름’은 신 셰프가 주옥에서 가장 자랑하는 메뉴다.

‘경계’ 없는 한식 비스트로의 시작= 미쉐린은 ‘익명’이 기본이다. 엄격하고 깐깐한 평가원들이 익명으로 레스토랑을 찾아 음식을 맛보고 간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추정할 만한 평가원의 얼굴도 있을 법 하다.

“아… 너무 많았어요. 처음엔 외국인이 오면 괜히 평가원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린 ‘잘해, 잘해’ 그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웃음) 근데 너무 많아지다 보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내려놓고 평상시처럼 하는 거죠.”

대한민국의 쟁쟁한 레스토랑 중 미쉐린의 별을 받는 곳은 고작 26개. 이 안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별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옥은 속도가 빨랐다.

“일단은 담담해요. 그저 좋다기 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책임감, 뭔가를 더 해야한다는 생각이 커요.”

미쉐린 가이드 발표가 있던 날, 하필이면 “하수구가 막혔다”. 그 후로 이틀 내내 말썽이다.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신창호 셰프와 주옥은 다시 분주해졌다.

주옥은 ‘한식 비스트로’를 표방하지만, 이 곳의 음식엔 경계가 없다. 주옥의 독특함은 신창호 셰프의 요리 철학과 이력에서 비롯된다.

15년을 국내에서만 일하던 신창호 셰프는 30대 중반에서야 새로운 길을 갔다. 미국 마이애미 일식당 ‘노부’로의 요리 유학이었다. “제가 20대 때 국내에서 가장 유명했고, 많은 책을 읽은 곳이 노부였어요. 노부는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곳은 아니었지만, 꿈의 레스토랑같은 곳이었죠.” 2013년, 서른 다섯, 결혼 8년차. “해외에 나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어요. 보통 나갈 생각을 안 하는 나이죠. 저한텐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요리를 했던 아내의 지원은 든든했다. “어릴 때 나가고 싶어도 못 갔던 걸 알기 때문에 보내준 것 같아요.”

노부에서 4년간 경력을 쌓은 뒤, 한국에 돌아와 ‘주옥’을 열었다. 한식은 “군대 간부식당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는 ‘한식’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흔히 말하는 ‘정통 한식’은 아니었다. 그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한식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땐 좀 불만이 있었어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데 셰프든 손님이든 고정관념이 있더라고요. 프렌치는 버터만 써야 하고, 간장은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요. 특정 재료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음식에 큰 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에 갇혀있는 것은 불만이었어요.”

그 생각에 힘을 실어준 건 책으로 만난 ‘롤모델’인 테츠야 와쿠다(Tetsuya Wakuda) 셰프였다. 테츠야 와쿠다 셰프는 ‘재패니즈 프렌치의 1세대’다. 그의 책과 음식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노부에서의 경험도 신 셰프의 요리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노부의 음식엔 페루도 있고, 남미도 있고, 모든 나라의 음식이 있어요. 일식이라는 틀에 모든 걸 붙일 수 있더라고요. 지금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 몰라도 그 당시엔 엄청났죠.” 신 셰프가 담고 싶은 한식의 세계였다. 

주옥의 저녁 코스 요리 중 하나인 ‘청담육회’는 페이스트리 위에 육회가 올라간 독창적인 식재료의 조합으로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음식이다.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직하게”=‘주옥’이 문을 열자 초창기엔 ‘이게 어떻게 한식이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신 셰프는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외국인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한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식에 정통하진 못해도 배워가며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저만의 것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초기 메뉴보다는 조금 더 한식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처음엔 한식과 양식이 5대5 정도였다면, 지금은 7대3 정도예요.”

주옥을 찾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맛 보는 음식은 ‘초’(醋)다. 신 셰프는 주옥에서 손수 식초를 담근다. 직접 만든 ‘초’는 주옥의 또 다른 얼굴이다.

“솔직히 간장 된장 고추장은 단시간에 제가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소스가 아니었어요. 집에서 한 번 만들어봤더니 식초는 재밌더라고요. 포도가 처음이었어요. 그 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

아는 게 없어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포도가 초를 만들기에 제일 쉬운 재료더라고요. (웃음)” 포도와 같은 베리류의 껍질엔 효모가 많아 술이나 식초로의 완성도가 높다. “실패 확률이 적은 재료였던 거예요.” 시행착오는 많았다. “지난 1년 6개월은 계속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지금까지 만든 식초는 무려 20가지. 그 중 버려진 식초는 7가지나 된다. 아버지가 키운 블루베리로 만든 것은 ‘귀한 재료를 버리게 돼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식초’였다. 지난해 실패를 발판 삼아 올해는 성공. 때에 따라 달라지나, 지금 주옥에 가면 블루베리, 쌀, 레드와인 식초가 맨 처음 제공된다.

신 셰프에게 요리는 ‘평생 직장’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요리책에 있어서만큼은 ‘탐독’ 수준이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라면서 “좋은 요리를 맛볼 땐 살짝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도 한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창호 셰프의 눈엔 지치지 않는 생기가 돈다.

“사람들이 찾는 이 곳이 정성스러운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성껏 하자고 항상 이야기해요. 주옥의 음식을 한 마디로요? 정직함이에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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