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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경제 대침체 한중심에 ‘유로화’가 있다
석학 스티글리츠 혹독한 비판
이자율·환율 조정 메커니즘없어
내수·수출 촉진 위한 대응 한계

독일-유로, 키프로스-유로 등
가치 다른 ‘유연한 유로’ 제안


‘유로화는 허점투성이 경제학과 이데올로기가 혼합되어 빚어낸 것이다’ ‘유로화는 오랫동안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못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석학 스티글리츠가 저서 ‘유로’(열린책들)에서 혹독하게 유로를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 유럽경제가 10년에 가까운 이른바 ‘대침체’를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위기의 중심에 ‘유로’가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1999년 축복 속에 출발한 유럽 통합의 상징인 공동화폐 ‘유로’는 20여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분열의 주범이 됐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유럽의 위기는 흔히 알려진대로 일부 위기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아니라 유로 탓이다.


유로존 국가들 간에 차이점이 크고 이질적인 경제주체들이 유로화란 공통화폐로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건 그나마 경기가 좋을 때나 가능하다. 그것도 고정된 환율이 불확실성을 제거해 국제거래를 촉진하고 환전 비용이 없다는 약간의 장점 외에는 매력요소가 별로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문제는 경기침체기이다. 일반적으로 경제 침체에 처한 국가는 소비와 투자 촉진을 위해 이자율을 낮추거나 수출 장려를 위한 낮은 환율,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이는 재정정책 등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킴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유로는 앞의 두 가지를 쓸 수 없게 돼 있다. 저자는 개별국가가 환율과 이자율을 조정할 메커니즘을 갖지 못하고 대체할 수단 없이 손놓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유로존 위기의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결과는 약체국가들에게 막대한 채무를 안겼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자금이탈은 가속화 됐다. 유로 위기가 발생하자 자금이 약한 국가의 은행 시스템을 떠나 강국의 은행 시스템으로 옮겨가는 이탈은 시작됐다.

이에 따라 위기국가의 은행들은 대출을 축소하는 민간 긴축에 들어갔고, 이는 특히 중소기업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중소기업 의존형 국가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강한 나라는 더 강하게, 약한 나라는 더 약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 2007년 독일의 GDP가 그리스의 10.4배에서 2015년에는 15배로 크게 늘어난게 바로 그 결과다.

저자는 여기에 약체 국가의 위기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주범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 IMF 등 트로이카의 긴축 프로그램을 꼽는다. 트로이카가 위기 국가들이 절망에 빠진 순간을 이용해 지출 삭감, 세금 인상을 포함한 재정정책을 강요했는데 이는 위기국가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재정 정책 마저 빠앗아 버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당초 유로존의 건설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됐다. 유로존 창설자들도 유로존 국가간 과도한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 부분이 깊은 경기 침체를 겪을 때 다른 쪽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수 있고, 한 쪽이 무역 흑자를 얻을 때 다른 쪽은 큰 적자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과도한 정부 적자와 부채만 없다면, 적절히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유로존 국가는 지난 10년간 안정과 성장은 커녕 아직도 헤쳐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걸까. 스티글리츠는 유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강조한다. 제대로 관리된 방식으로 단일 통화 유로 실험의 종식이다.

고쳐쓰는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그가 ‘유연한 유로’라 이름붙인 새로운 시스템이다. 각국이 여전히 유로화로 교역을 하지만 ‘그리스-유로’와 ‘키프로스-유로’ 혹은 ‘독일-유로’가 동등한 가치로 교환되지 않는 통화제도다. 스티글리츠는 이 제도가 지금 유럽의 연대수준에서 고정 환율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스티글리츠는 왜 경제가 종종 균형상태로 수렴하지 않고 불안정한지, 경제과학과 확실한 근거 대신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경우, 잘 계획된 경제통합 노력조차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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