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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이재광 광명전기 회장] 회장이 된 신입사원…‘中企’·‘사람’을 말하다
광명전기 입사 21년만에 오너로
이재광 회장 “현장목소리 반영한 실질 정책 필요” 정부에 주문
“사람 찾는게 가장 어려워” 일·학습병행제 도입 선도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가 산다.’ 정부가 수십년동안 ‘상생’, ‘동반성장’, ‘창조경제’ 등 수식어를 바꿔가면서 친중소기업 정책을 외쳐댔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서도 ‘혁신성장’ 같은 거대 담론만 나올 뿐 규제 개혁이나 실질적인 중소기업 지원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오히려 중소업계의 소외감만 커지고 있다.

23일 서울 방이동 광명전기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이재광(58) 광명전기 회장은 ‘중기대변인’이라는 별칭답게 인터뷰가 시작되자 마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재광 광명전기 회장은‘ 중기대변인’이라는 별칭답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동반성장이니 혁신성장이니 하는 거대담론 보다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 중소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현장 목소리 담은 중소기업 정책·지원 필요=이 회장은 “현재 ‘히든챔피언’, ‘강소기업’이라고 불리는 중소기업들 대부분은 대기업 협력업체들”이라며 “그러나 이들 기업은 대기업에서 거래를 끊으면 당장 문닫을 위기로 몰리는 단순한 하청업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자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상품을 가진 글로벌 강소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노력해줘야 한다”며 “대기업이 흔들려도 독일이나 대만 경제가 견디는 이유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든든한 허리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월급쟁이로 시작해 중견기업 회장까지 오르며 ‘샐러리맨신화’를 썼던 이 회장. 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지낸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실질적이고 바람직한 중소기업 정책을 세울 수 있다”며 “붐 조성보다는 체계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기업은 자기 역량으로 R&D를 충분히 진행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R&D 예산을 확보해줘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일자리 창출’보다 ‘일거리 확보’ 정책이 선행돼야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샐러리맨 신화’의 시작과 시련=이처럼 이 회장이 ‘중기 대변인’으로 나선 것은 중소기업 월급쟁이로 시작해 중견기업 회장까지 오르며 뼈 속까지 ‘중기맨’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82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며 산업용 중전기기제작업체인 광명전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광명전기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을 때 “앞으로 5년간 업무에 집중해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쌓고 10년 후에는 창업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이런 목표를 정한 그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업무에 매진, 동기 중 가장 먼저 팀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당초 계획대로 1993년 직접 경영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회사를 나와 창업에 나섰다. 당시 그를 높이 평가했던 한 사업가가 자신의 회사 인수를 제의, 전세자금과 대출 등 2억5000만원을 마련해 사업을 시작했던 것.

이후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인수 당시 매출 5억원짜리 한빛일렉컴은 이 회장의 경영수완으로 50억~60억원 규모로 훌쩍 커졌다.

반면 자신의 친정인 광명전기는 외환위기 한파로 인해 19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계열사간 과도한 지급보증이 부실의 뇌관이 된 것이다. 광명전기는 2002년 법정관리 졸업 이후에도 명동 사채업체에 인수되면서 모진 풍파에 휘말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시 경영진이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노동조합이 이를 고발하는 등 광명전기는 그야말로 풍비박산 위기에 처했다.

광명전기 직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광명전기를 구해달라”고 이 회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 회장은 고심 끝에 한빛일렉컴을 45억원에 매각하고 2003년 광명전기를 인수했다.

이 회장은 광명전기 신입사원으로 입사한지 21년 만에 광명전기 오너가 된 것이다. 그는 가업을 물려받지도 않고 창업가도 아니면서 한 기업의 정점에 섰다는 흔치 않은 이력 덕분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목표를 항상 세우고 지속적으로 달성하다보니 대표이사까지 오르게 됐다”며 “막연한 목표보다 구체적인 실천 가능한 인생 목표를 잡았던 것이 주효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의 단꿈은 금새 위기를 맞이했다. 2003년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광명전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였다. 전기 분야에서 50년 가까운 업력을 갖고 있고 영업력과 기술이 있었다. 연 매출은 300억원 정도. 회사 내 현금도 많았다. 반면 지배구조는 약했다. 적대적 M&A의 좋은 타깃이었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경영권 사수에 나섰지만 분쟁은 오래 지속됐다. 당시 이 회장의 우군은 현재 광명전기 각자대표를 맡고 있는 조광식 회장과 우리사주조합이었다. 2년동안 계속된 경영권 분쟁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이 회장을 믿고 지지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CEO=위기에 순간에서도 결국 사람이 해법이었다. 직원들이 이 회장을 믿고 지지했기에 경영권 방어가 가능했다.

이 회장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최고경영자(CEO)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것”이라며 “바꿔 말하면 위기의 해결 방안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같은 ‘사람’ 중심 경영관 때문인지 광명전기는 국내 중전기기 분야에서 일학습병행제를 가장 선도적으로 도입한 회사다. 일학습병행제는 독일과 스위스가 운영하는 도제제도의 한국형 버전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 기업의 현장 전문가가 직접 신입직원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광명전기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NCS 기업 활용 컨설팅 지원사업을 진행해 ‘전기설계 레벨3(L3)’ 자격종목을 개발했다. 이후 배전반설계팀, 구조설계팀, 연구소, 품질경영팀 등에서 입사한지 2년 이내의 직원을 선발해 ‘전기설계 레벨3(L3)’을 기초로 한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깨를 같이하며 경쟁하는 중전기기 업계에서 광명전기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적자원에 대해 끊임없는 교육투자로 기술개발을 선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의 중소기업 인재난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소기업 인재 양성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중소기업계의 인재난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 인력난과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재 확보 독자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스스로가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이 회장이 인수할 당시의 광명전기는 매출액 300억원에 적자기업이었다. 이 회장의 노력으로 광명전기는 시장에서 차츰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2010년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뒤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인수한 피앤씨테크가 지난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 광명그룹은 광명전기와 더불어 배전자동화단말장치(FRTU), 디지털보호계전기를 생산하는 피앤씨테크와 태양광발전시스템 개발·시공회사인 광명SG로 구성돼 있다.

이 회장은 “피앤씨테크 상장으로 광명그룹의 큰 그림이 완성됐다. 계열사 공장을 모두 집결한 제조타운을 구축해 시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제2도약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3개 계열·관계사 공장을 집결하면 품질, 창의력 등 시너지를 높일 수 있고 해외 바이어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제품 생산 전 과정을 보여줘 신뢰도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샐러리맨신화’의 주인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성장을 위해 그가 택한 길은 해외시장 개척과 태양광사업 등 제품포트폴리오 다변화다. 그는 광명그룹을 전통 전력사업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사물인터넷(IoT) 분야를 아우르는 전력 전문그룹으로 성장시킬 구상을 그리고 있다.

이 회장은 “광명전기는 현재 전 세계 10여개국과 거래 중이며, 전체 매출의 15%인 200억원을 수출에서 올리고 있다”며 “국가별로 요구하는 다양한 제품 사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수요처별 맞춤설계를 추진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제품포트폴리오 다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개폐기·차단기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부스덕트(대형 건물에서 전선을 대신해 전기를 운송하는 설비), 시스템부문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 성장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광명전기는 이미 사막형 태양광발전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에 실증단지를 마련하고 운영 중이다. 환경테스트와 안전성, 신뢰성 등을 검증해 사막지역에서 최적화된 태양광발전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사업모델화 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광명’이라는 브랜드를 보면 알짜·강소 전력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중소기업만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강소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2020년까지 매출 5000억원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중기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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