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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망양보뢰’와 ‘망양뢰가보’
규모 5.4 지진에 온 나라가 들썩이더니, 가장 힘겨웠을 수험생들이 23일에야 일주일 미뤄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놓은 제도와 관행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는 ‘이 하루’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일주일간 또다른 신종 부작용이 양산됐다.

일주일 고액 쪽집게 과외가 판치고, 시험을 앞두고 지긋지긋했던 참고서를 버리는 바람에 수험서 품귀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으며, ‘긴장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신체리듬을 잃었다는 수험생들이 생겼다고 한다. ‘또 무슨 일 생기는 것 아니야?”라는 민감증, 과대망상 마저 수험생과 그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스무살 전후 어느 초겨울 단 하루, 두 세 문제라도 실수로 틀리면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는, 이 괴물 입시제도가 ‘지진 무대책’이라는 재앙을 만났으니, 혼란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단 하루의 결과가 일생의 멍에로 남지 않는 입시-취업-승진 제도였다면 1주일 연기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고, 규모 5.4 지진쯤이야 충분히 견딜 내진 시스템이 일찌감치 정착돼 있었더라면 수능 시험일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양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亡羊補牢:망양보뢰)’는 중국 속담에 대해, 조선 중기 국정 전략가인 서애 유성룡은 정면 반박한다. 그는 서애집(西厓集) ‘감사感事)’편에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양을 잃고 우리를 고쳐도 늦은 것은 아니다(亡羊牢可補:망양뢰가보). 양을 잃었어도 우리를 고치고 말을 잃었어도 마구를 지을지어다(失馬廐可築:실마구가축). 지난 일은 비록 어쩔 수 없지만(往者雖已矣:왕자수이의), 오는 일은 그래도 대처할 수 있으니(來者猶可及:래자유가급).’

큰 화를 입은 뒤에도 대충 봉합하는 심리에는 ‘한번 당했으니 당분간 조용하겠지’ 하는 직무유기가 들어있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 꼭 고치자.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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