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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김용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빼빼로데이가 광군제가 될 수 없는 이유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었다. 비행기 이착륙시간도 바꾸는 엄청난 힘을 가진 수능시험도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온 나라가 지진과 수능연기 후유증을 극복하려고 노력중이다. 북핵, 사드, 적폐청산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지진 쓰나미에 사라졌다. 공휴일 하나 없는 한가한 11월이 지진에 의해서 요동치고 있다.

빼빼로데이라는 작은 기념일이 11월 11일에 있었다. 공식적인 날은 아니고, 빼빼로의 길쭉길쭉한 생김새가 숫자 11가 비슷한 것에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여학생들끼리 다이어트에 성공해 빼빼해지자며 빼빼로를 나눠먹는 날이 기원이었다고 알려졌다. ‘~데이’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해당 업계가 아닌 소비자 자신들이 만든 날이기도 하다.

한국에 빼빼로데이가 있다면, 중국에서는 11월 11일은 광군제다.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싱글들을 위한 날이다. 11월 11일이 싱글들을 위한 날이 된 것은 혼자임을 상징하는 듯한 ‘1’이라는 숫자가 4개나 겹쳐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1993년 난징대학교의 학생들이 애인이 없는 사람들끼리 파티를 열고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이날을 즐겼다.

2009년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광군제를 마케팅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광군절을 싱글들이 쇼핑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날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가 큰 성공을 거두고 그 이후로 광군제는 ‘쇼핑의 날’, 즉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자리 잡는다. 광군절은 매년 신기록을 양산하고 있다. 2016년 광군절 매출 100억 위안 돌파가 6분대였다면 올해는 3분대에 돌파했고, 최종 매출 역시 작년 대비 약 400억 위안 증가한 1682억 위안으로 종료되었다. 우리 돈 약 28조가 넘는 금액이니 그 규모가 빼빼로데이와의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다.

광군제 광풍은 단순히 마케팅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배후에는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특히, 최첨단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기술의 사용없이는 1초에 32만 번 이상의 결제를 처리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 흩어져 있던 100만대 이상의 서버를 한 대의 슈퍼컴퓨터로 연결하여 초당 수십만 건의 주문을 실수없이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인공지능 상담 챗봇은 광군제 당일 95%의 고객서비스 상담을 지원했으며 금융 상담 인공지능 서비스는 하루에 800만개의 질문에 답할 수 있었고, 화물 창고에 투입된 로봇은 하루에 100만 건 이상의 화물을 발송할 수 있었으며, 인공지능 디자이너는 이번 광군절 기간 4.1억 장의 제품 광고 시안을 뽑아냈다.

한국에서도 소비 진작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를 흉내 내어 2015년 정부주도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기획되었다. 메르스 사태로 침체된 소비 심리를 살리려는 조치였다. 2015년 9월 25일 금요일 3대 백화점을 시작으로 10월 14일까지 평균 2주가량을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 전통시장, 프랜차이즈 업체 등 전국적으로 2만 개 이상의 점포가 최대 70% 할인을 적용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가 주도하여 할인 폭이나 할인상품에 제한이 있어서 소비자의 외면을 초래했다. 정부주도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의 비효율성을 엿볼 수 있다.

광군제의 성공은 적어도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산업분야에서는 정부주도보다는 민간주도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부는 좀 더 유연하고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며 민간부분의 성공을 위한 도우미로서의 역할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가 IT 기업 창업자에게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배우라는 훈수를 두는 해프닝에서, 빼빼로데이가 광군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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