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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금융이 새 술이고 새 부대인가
정권이 바뀌면 금융계 수장들이 교체됐던 전례가 이번에도 반복되는가 싶다. 낌새가 이전 정권, 또 그 이전 정권 초 모양새와 매우 닮았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국책은행장들이 하나 둘 바뀌더니, 은행장, 금융지주회장 등으로 불리던 민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비리 연루 의혹을 받으며 줄줄이 낙마하고 있다.

채용비리 의혹을 받던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 2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로써 이 행장은 지난 8월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성세환 BNK금융회장 겸 부산은행장에 이어 새 정권 들어 낙마한 두 번째 민간은행장이 됐다. 박인규 DGB금융 회장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어 언제 자리에서 물러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친 박근혜 정권 인사라는 점이다. 성 전 행장과 박 회장은 각각 부산, 대구를 기반으로 한 구 여권 인사들과 교분을 쌓았던 인사라는 점에서, 이 행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부상한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일원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사람으로 분류돼 왔다. 이 때문에 최근 이들의 ‘위기’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숙원 과제였던 민영화를 달성한 공로로 올해 초 연임에 성공했던 이 행장의 낙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냉철하다. 관행처럼 반복돼온 채용청탁 비리가 불거졌다고 해서 은행장이 물러나는 사례는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장이 연루된 일이 아니라면 담당자와 당해 임원 해임 정도로 끝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 행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여러 경로로 사퇴 압력을 받지 않았겠냐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금융계 수장들의 위기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인사청탁을 했다는 의혹으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노조의 설문조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각각 검찰과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투자, 하나카드 등 각 회사 노조의 경영진 성토 투쟁으로 말미암아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는 말이 있지만 어디 금융이 새 술이고. 새 부대인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금융계 인사들을 정권 입맛대로 바꿀 수는 없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행 수장을 교체하는 것까지야 봐 줄만 하다. 어차피 공금융기관 인사는 정부 몫인 까닭이다. 나라 곳간을 축낼 금융 문외한이 아닌 담에야 행장 자리에 누구를 내리꽂는다 해도 욕할 일은 아니다. 이전 행장들이 모두 과거 정권 창출에 공을 세웠던 친 정권 인사라면 더욱 그렇다. 이들을 교체한다고 목에 핏줄을 세울 순 없다.

그러나 새 정권이 자율경영의 원칙과 룰에 따라 선출된 순수 민간금융회사의 수장들마저 교체하려 든다면 말은 달라진다. 엄연한 경영간섭이요, 권력 남용인 까닭이다. 특히 최근 일련의 검경수사와 비리의혹 제기가 그간 정치권력과 담을 쌓고 경영에만 진력했던 인사들을 끌어내리기 위한 ‘수순’ 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고ㆍ소ㆍ영‘과 4대 천황에게, 서금회와 연금회에게 금융을 넘겼던 과거 정권의 폐단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질 없는 인사를 내 사람이란 이유로 금융계에 내리꽂는 행위나 이를 위한 정지 작업은 이제 더는 반복해선 안 된다. 한국 금융시장을 멍들이고, 결국엔 나라를 망치는 일인 까닭이다.

윤재섭 산업투자섹션 에디터/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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