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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디자인포럼2017 D-1] 日 대표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인터뷰…닳고 닳을수록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최상의 평범함’
-밋밋하고 단조롭지만 퇴색하지 않는 미(美)
-최소한의 형태로 충분한 기능을 담은 디자인
-후카사와, “평범함이란 원형에 도달하는 것”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일본에는 ‘슈타쿠’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손으로 윤을 낸’이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표면이 부드럽게 마모된다. 닳고 닳아 윤기가 흐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한 아름다움만 남는다. 이런 자연적인 미(美)는 끊임없이 사용돼도 건재하고, 새 것보다 더 아름답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MUJ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ㆍ61)의 디자인에는 ‘슈타쿠’가 묻어난다. 그의 제품은 역동적인 굴곡, 날카로운 절취선, 현란한 무늬, 원색의 페인트 등 공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밋밋하고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 무엇보다 그의 디자인은 실용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MUJ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ㆍ61)
후카사와 나오토가 디자인 한 무인양품(無印良品)의 벽걸이형 CD 플레이어. (CD Player, 1998, MUJI, photo by Naoto Fukaswa Design)

후카사와 대표 제품이자 무인양품의 스터디셀러인 ‘벽걸이형 CD플레이어’만 봐도 그렇다. 그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줄을 잡아당기는 행동에서 착안해 환풍기 모양의 CD플레이어를 디자인했다. CD플레이어에 달랑달랑 매달린 줄을 잡아당기면 프로펠러 대신 시디가 돌돌 돌아간다. 눅눅한 바람 대신 순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행위와 물건의 관계성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는 디자인이다.

후카사와는 유년 시절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말과 무의식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흥미를 느꼈다. 퇴근 후, 녹초가 된 직장인이 침대에 털썩 앉아 전등 아래에 열쇠뭉치와 시계, 휴대전화를 늘어놓는 모습, 종지기처럼 어딘가에 매달린 줄만 보면 잡아당기고 싶은 무의식적인 습관, 벽장에 걸려있는 옷과 옷 사이를 부유하는 공기의 흐름까지. 모든 평범한 성질들이 응축돼 최상의 ‘평범함’을 낳는다.

후카사와에게 디자인이란 “평범하게 응어리진 것들을 조금씩 다듬어 우리의 일상에 맞추는 작업”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원형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이러한 원형에 근접한 디자인을 ‘슈퍼 노멀(Super Normal)’이라고 부른다. 슈퍼 노멀은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최상의 것’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의자, 접시 등 친숙하고 익숙하며 곁에 두고 싶은 것들은 그 자체로 ‘슈퍼 노멀’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원형에 도달하는 것”이라며 “원형은 매우 단순하지만 닿기 어려운 것으로 한번 찾았을 때 필연적인 것, 즉 ‘슈퍼 노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젊었을 때 이따금 변화에 휩쓸리기도 했지만 결국 항상 원형을 찾고 있었다”며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평생과제에 직면하지만, 진정한 원형을 찾는 디자이너는 몇 없다”고 덧붙엿다.

사물, 혹은 존재의 ‘원형’을 갈망하는 그의 집념은 디자인을 향한 원동력이 된다. 그는 “디자인이 우리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어떤 디자인 프로젝트를 받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음과 머리가 굴러가는 역동적인 순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후카사와는 언젠가 ‘집’을 디자인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은 총체적 삶의 방식이 집약된 곳이다. 머릿 속에 어떤 집을 구상한다는 것은, 내부와 주변까지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오래된 건물과 도시가 마음속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듯,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안락한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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