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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은 한글날②] 갓띵작, 커엽 등 넘치는 신조어…“한글 훼손”vs “온라인 소수 문화” 팽팽
- 갈등 조장하는 신조어, 우리말 배우는 아이들에게 치명적
-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면 괜찮다는 신중론
- 사회현상 담은 재치있는 신조어도 있어… 옹호론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딸아이를 둔 이모(39ㆍ여)씨는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며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는 아이들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취존(취향존중)’, ‘커엽(귀엽다)’,‘비담(비쥬얼 담당)’ 등 전혀 처음 들어보는 말을 쏟아냈다. 이 씨는 덜컥 겁이나 “이상한 말 쓰면 안 된다”고 혼을 냈다.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쓰는 말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지만 이 씨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한창 우리 말을 배울 나이에 무턱대고 줄임말을 쓰는 것 같아 우려됐기 때문이다.

오는 9일, 571번째 한글날을 앞두고 최근 범람하는 인터넷상의 신조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논쟁이 뜨겁다. 젊은 세대의 줄임말이나 은어 등 신조어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늘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 사용 연령이 낮아지면서 온라인 신조어에 노출되는 나이도 함께 낮아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은 깊어지고 있다. 1020대들의 단어를 이해하기 어려운 기성세대 역시 젊은 세대와 소통이 더욱 단절될까 우려한다. 반대로 일각에선 온라인상에서 재미삼아 쓰는 줄임말이나 은어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오히려 사회 현상을 재치있게 담아내는 단어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는 예찬론도 있다. 

온라인에 유통되고 있는 2017 신조어 테스트 [사진제공=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7 신조어 테스트 정답

▶질 낮은 신조어, 학생들 교육에 악영향= 신조어 범람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최근 형성되고 있는 신조어가 선정적이고 갈등을 조장하는 속성을 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신조어의 질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느개미ㆍ느금마 (부모 비하 표현), 한남충(한국 남성 비하 표현), 삼일한(여자는 하루 세 번 맞아야한다는 비속어) 등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특정 집단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신조어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정모(43)씨는 최근 아들이 “오지구요”, “지리구요”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토로한다. 정 씨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극적인 표현들이 쉽게 전염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학생들이 섬세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가진 우리 글을 외면하고, 한글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초등학교 교사인 한모(29ㆍ여)씨 역시 무분별한 신조어 사용이 한글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어, 일본어, 한국어가 뒤엉켜 우리 말 문법을 해치는 신조어들도 많다”며 “학생들이 우리 말의 질서와 원리를 배우기도 전에 이상한 외계어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신조어 등장으로 세대 간 소통이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모(49)씨는 인터넷에서 중고 휴대폰을 사려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은어, 줄임말들 때문에 곤혹을 겪었다. 1대1 채팅방에서 판매자가 하는 말들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평소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지만 모르는 말이 많아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한다면 괜찮아, ‘옹호론’= 반면 온라인상 비속어, 줄임말, 은어 등은 주로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비록 선정적이거나 저질적인 표현을 쓰더라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러한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대학생 정모(24)씨는 “재미삼아 쓰는 신조어는 한글 파괴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렸을 때 재미삼아 비속어, 은어 등 저질스러운 단어를 쓰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줄임말을 쓰는 어린 친구들도 나중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그런 단어가 촌스러워지는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현상을 압축적으로 풀어내는 신조어가 재미를 준다는 의견도 있다. 직장인 김모(32ㆍ여)씨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신조어 테스트를 하면서 독창적인 단어 조합에 감탄을 연발했다고 말한다. 그는 “할말하않(할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팀일병(팀장 1년차 병) 등 처음 볼 때는 뜻을 유추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신기하게도 의미를 알고 나면 단어가 확 와닿았다”며 “재밌는 줄임말이나 재치있는 은어는 언어생활을 재밌게 해주기 때문에 나이가 더 들어서도 사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조어의 흐름을 보면 우리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의 고등학교 2학년 안모(18)군은 “청년 실업이 어려워지자 청년 관련 각종 신조어가 나오고 사회에서 성평등 문제가 해결이 안되자 남녀를 혐오하는 단어가 쏟아진다”며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신조어가 많아질 수록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든 것 같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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