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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하기 딱 좋은 연휴…소설 한 권에 마음이 풍요롭다
신인부터 원로 작가까지 다양한 신간 주목
사회부패 고발·삶 위로 자전적 작품 등 다채
분단작가 이호철 추모소설집 책장 넘겨볼만
‘살인자의 기억법’ ‘82년생 김지영’등도 눈길


휴가철은 밀린 소설을 읽기에 좋은 때다. 일상에 쫒겨 읽지 못하고 미뤄둔 것, 찜해둔 걸 읽는 재미는 그 어느것 이상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김지영의 ‘82년생 김지영’ 등 모처럼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막 나온 따끈따끈한 소설도 눈길을 줄 만하다.

‘열외인종 잔혹사’의 작가이자 최근 강렬한 인상을 남긴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해 새롭게 조명을 받은 주원규는 ‘나쁜 하나님’을 들고 왔다. 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임영태 작가는 7년만에 신작 소설 ‘지극히 사소한’‘지독히 아득한’을, 독특한 사유와 글쓰기를 해온 김솔의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등 개성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등단 64년을 맞은 최일남 작가의소설집 ‘국화 밑에서’, 분단작가 이호철을 기리는 추모 소설집 ‘큰 산 너머 별’도 챙겨볼 만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몫의 돌을 굴려 올리며 그 숙명 안에서 자기 존재의 긍지를 찾는다. 세상 누구인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인가. 비굴한 아첨도 허세도 뻔뻔함도, 남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마저 아무튼 저마다의 고군분투이다. 그런 눈길로 바라보면 모든 삶이 눈물겹다.“(‘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작가의 말에서)

임영태의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마음서재)은 ‘비디오를 보는 남자’(1995),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2010)에 이은 삼부작격이다. 비디오가게, 대필 사무실, 편의점이라는 욕망의 통속적 공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소설엔 지방 소읍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초로의 남자가 등장한다. 40대 중반에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해 몇 년간 농사를 짓고 지금은 국도변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작가의 일상이 그대로 들어있는 작품이다. 인구 오천여 명이 사는 작은 읍, 대문 앞 도로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이 그의 일터다. 그곳에서 ‘나’는 밤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야간근무를 , 아내는 또 다른 편의점에서 주간근무를 한다. 둘이 마주 앉을 때가 일주일에 한 번 뿐이지만 나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활력을 얻는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계산대 안에 들어가면 마치 우주선에 탑승한 기분이 든다. 우주적 적막함과 경쾌한 비장한 같은 걸 느끼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는 편의점처럼 삶이란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형태가 됐든 시지프스처럼 저마다 자기 몫의 돌을 굴려올려야 하는 삶을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고 위로한다.

김솔의 ‘너도밤나무 바이러스’(문학과지성사)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암울한 이야기다. 책의 재앙은 너도밤나무 숲을 빠져나온 직후 시작된다. 가는 곳마다 역병이 번져 등장인물이 거의 모두 살해되고 역병은 손쓸 수 없이 퍼져간다. 결국 도서관 전체를 폐쇄하기에 이르고 회복가능성이 없는 책들은 불태운다. 그래도 역병은 제압되지 않는다. 나중에 이 바이러스는 너도밤나무 바이러스로 명명된다. 책의 어원이 시작된 나무와 책의 미래를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 것이다. 총 42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저마다 여러 화자가 출현하고 서사 파괴적이어서 난해하게 읽히지만 책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주란의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민음사)는 색다른 가족 서사를 보여준다. 도시의 외곽에서 살아가는 빈곤한 사람들의 찌질한 삶을 자잘하게 그려내되 신세한탄조 대신 적절한 거리두기로 냉담과 농담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제 많은 아버지, 징그럽고 우스꽝스럽고 두려우면서도 한심한 희화화된 아버지가 있다. 작가는 특유의 담담함으로 더 이상 어떤 권위도 지니지 못하는 아버지의 몰락을 그려낸다.

주원규의 ‘나쁜 하나님’(새움)은 교회의 타락, 세상이 보지 않으려 하는 어두운 그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십수년 만에 율주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고향에 돌아온 정민규는 자신의 오점을 지우고 묵묵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그러나 율주시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김인철 장로와 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둘러싼 비밀을 알아가게 된다.

일곱편의 단편을 모은 최일남의 소설집 ‘국화 밑에서’는 그 연륜 만큼이나 깊고 그윽하다. 구수하고 감칠맛 도는 일상의 말들이 소설의 참 맛을 준다. 이번 책에 묶인 작품들은 죽음이 낯설지 않은 노년의 실존과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과 세상, 풍속과 세태의 못다 한 사정을 챙기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자리를 궁글리고 에두르는 사유와 저작으로” (문학평론가 정홍수) 노년문학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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