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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자궁은 포궁, 출산은 출생”…‘젠더 폭력’ 젠더리스 언어로 맞서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언어에 반영된 성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취지로 ‘성별 구분이 없는’(genderless) 대안 단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1990년대 영미권에서 ‘policeman’처럼 ‘man(남성)’을 사람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사용한 단어를 성 구분 없는 ‘police officer’로 사용하자는 운동이 활발히 진행돼 온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의 경우, 한자 子(아들 자ㆍ자식 자)가 아이를 나타나는 보통 명사로 사용된 ‘자궁’(子宮) 대신 胞(세포 포)를 사용한 동의어 ‘포궁(胞宮)’을 사용하자는 운동이 대표적이다. 자손(子孫), 자식(子息) 등의 단어도 아이로 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같은 변화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전사회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확산됐다. 초창기에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던 운동이지만 페미니즘 담론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의식적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젠더리스 언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은 단순히 일상 생활이나 SNS 상에서 대안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국립국어원을 통해 성 고정관념이 반영된 단어 뜻이나 용례를 수정해달라는 요청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온 용례가 수정됐다. ‘괄괄하다「1」’의 용례로 실린 ‘계집애가 사내처럼 성격이 {괄괄해서} 걱정이다’는 표현이 “남성은 자기 주장을 세게 해도 되고 여성은 자기 주장을 굽혀야 한다”는 젠더폭력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국립국어원 표준정보보완심의회의가 수용한 결과다.

이같은 젠더리스 언어는 사회적 사건과 맞물려 세간의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 가임기 여성의 분포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논란이 되자 여성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출산’이란 단어 대신 아이를 주체로 한 ‘출생’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출산을 여성의 의무로 보는 정부 부처의 인식을 반박하면서다.

주로 이별 후 복수하려는 목적으로 상대방과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성범죄는 초창기 ‘리벤지 포르노’로 불리고 언론 등도 해당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디지털성범죄아웃(DSO) 등의 페미니즘 단체에서는 피해자의 영상을 ‘포르노’로 부르거나 일방적 범죄에 ‘복수’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를 주어로 한 ‘디지털 성범죄’로 부르고 있다.

반면 성 고정관념이 반영된 언어룰 순화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일부 확산되는 부작용도 있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아주머니’가 ‘아기 주머니’라는 뜻이며 아가씨는 아기 ‘씨’를 지닌 사람이라는 내용이 퍼졌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비슷한 단어인 아줌마는 여성을 낮춰부르는 말로 사용을 지양해야 하지만, 소문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입장이다.

이택광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언어적 표현을 규범화 하고 강요해 도그마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90년대 일어난 정치적 올바름 운동(political correctness, PC)은 노인이라는 말 대신 시니어 시티즌, 흑인 블랙맨을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순화해 인식 변화를 도모했지만 PC에 대한 반작용으로 도널드 트럼프로 이어졌다”며 “기존 질서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아 토론과 대화의 가능성을 여는 개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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