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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목숨걸고 불끈 소방관이 손해배상에 시달리는 현실
소방관들이 불을 끄다 기물을 파손하거나 긴급 출동 중 교통사고를 냈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가 져야 한다. 가령 한 아파트 베란다에 불이 났다고 치자. 이 때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들이 혼신을 다해 무사히 화재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현관문이 부서지고 소파가 찢어졌다. 집 주인이 이에 대한 변상을 요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방차 진입로 확보를 위해 골목길 차량을 치우다 손상이 생긴 경우 등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국가가 보상해야 할 사안이다. 이걸 소방관 개인에게 책임지라고 한다면 누가 봐도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적지않다고 한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화재진압 등으로 인한 기물 파손을 변제를 요구받거나 변제한 사례가 모두 54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숫자는 유선상 간이 보고만 따진 것으로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는 게 소방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웬만하면 소방관이 개인적으로 조용히 처리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도 건다. 그런 이들에게 피해 보상 책임까지 지게 하다니 부끄럽고 황당할 뿐이다.

이런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나 민ㆍ형사 소송까지 이어지는 일도 잦다. 지난해에도 7건의 소송이 있었는데 주로 긴급 출동중 생긴 교통사고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법률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소송 비용은 대부분 소방관 본인이 부담한다. 구급차와 소방차 등이 긴급 출동을 하다 사고를 내도 정상은 참작하지만 어디에도 면책 규정은 없다.

소방관 면책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제도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목숨을 걸고 출동하는 소방관들에게 교통사고와 기물 파손 책임 부담까지 지운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물론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방기본법에는 소방관이 일으킨 물적 손실은 국가가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부를 가리려면 또 법정으로 가야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물적 손실을 보상해 준다지만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아니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민ㆍ형사상 면책법이 절실하다. 지난해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소방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법안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받는 소방관도 있다고 한다. 소방관이 위축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정치권이 좀 더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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