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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한국엔 스티브 잡스가 없는 이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스티브 잡스’ 발언으로 촉발된 폭풍이 일단락됐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번 사안은 우리 정부가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돌이켜보면 일면식이 없던 ‘김상조, 이해진’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꼬였다.

이해진 전 의장이 갑자기 공정위를 방문하면서부터다. 이 전 의장으로서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지만, 곧 심의를 받는 기업의 총 책임자가 심의기관을 직접 방문한 것은 한마디로 ‘나이브(Naive·순진한)’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된 것도 모자라 해당 기관의 장관으로부터 조롱에 가까운 평가까지 받았다.

김 위원장은 네이버 창업자인 이 전 이사회 의장(현 글로벌투자책임자)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며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반발은 즉각 터져 나왔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오만하다”고 맹비난했다. 이 표현을 “부적절하다”로 수정했지만, “동료 기업인으로서 화가 난다”는 불만은 그대로다. 여기에 1세대 벤처기업가 출신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11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공직자로서 자중하겠다”고 사과하며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남았다.

갈등의 근본은 30년 전 재벌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준대기업집단 제도를 재벌과는 태생이 다른 IT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공정위는 지난 1일 자산 5조원이 넘는 네이버를 준대기업집단 기업으로 신규 지정하고, 이 전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네이버는 이 전 의장의 지분이 4%대에 불과하고 친인척 순환출자 등이 없는 투명한 지배구조인 만큼, ‘총수’ 지정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공정위는 비록 이 전 의장의 지분은 낮지만 실질적 지배력까지 고려했다는 것이지만, 다시한번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공정위가 행정을 위한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정권교체에 따라 공공기관에 지정, 해제, 재지정을 반복하고 정부 지분 하나 없는 한국거래소가 뒤늦게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사례가 연상된다.

결과적으로 규정 적용의 합당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기보다는 이번 건으로 ‘설전(舌戰)’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이폰 이후 스티브 잡스는 세계적인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국내 벤처기업인들의 성과에 대한 존중 없는 일방적인 폄하는 종사자들에게 허탈감만 줄 수 있다. 이 전 의장에 대해서는 혹평한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진화 중”이라고 발언하며 씁쓸함은 더욱 커졌다.

대체 ‘스티브 잡스 답다’는 것이 뭘 말하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려면 잡스 정도는 돼야 하는 것인가”라는 자조도 IT벤처업계에서는 나온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지나친 사대주의가 배어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공정위는 기업의 불법 행위와 시장 질서를 감시하는 곳이지, 기업인의 자질과 경영전략을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설령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부적절하다. 김 위원장은 더 이상 교수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제2의 스티브 잡스’를 찾는다는 문구가 공공연하다. 그러나 기업인의 성과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라면, ‘제2의 잡스’는 커녕 가뜩이나 주눅든 기업인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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