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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연구소장]남북 태권도의 주변인 된 해외사범
남북태권도 교류에 대한 질문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난 70대의 태권도 사범이 첫 마디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저는 1971년 국제태권도연맹(ITF)에 의해 해외사범으로 나갔다”고 첫 말문을 연 후 마이크를 잡고 상기된 모습을 보이던 그는 오른편으로 기우뚱하다가 곧 고목나무가 넘어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위 사람들이 재빠르게 쓰러진 그의 넥타이를 풀고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여러 차례의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으로 멈췄던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응급신고를 받고 도착한 119 구급대에 의해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 효과적인 응급조치와 신속한 119 구급대의 출동으로 그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1974년부터 포르투갈에서 수십년간 해외사범으로 활동한 정선용 사범은 지난 25일 국기원 태권도연구소(소장 이봉)가 주관한 ‘태권도, 남북의 징검다리’ 학술 세미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남북한의 이질적인 태권도 역사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범이었다.

남북한으로 나뉘어진 태권도는 한때는 동질적인 역사를 갖고 있었다. 세계태권도를 양분하고 있는 ITF와 세계태권도연맹(WTF, 최근 WT로 변경)은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송무관 YMCA 권법부 등 국내 5개 기간도장을 기반으로 해 창설됐다.

ITF는 ‘태수도’에서 ‘태권도’로 명칭을 바꾸는데 일조한 최홍희 전 대한태권도협회장이 지난 1966년 창설했으며, WTF는 김운용 전 대한태권도협회장이 1973년 처음으로 만들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념으로 출발한 두 단체는 그동안 수십년을 이어오면서 현실적으로는 ‘태권도의 남북경쟁’으로 대치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WTF와 ITF는 이념에 의해 좌우되는 남북한 체제의 바로미터가 됐다. 두 단체는 해외 태권도 사범을 대거 파견하고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WTF는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GAISF)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반해 ITF는 최홍희씨가 1972년 반한감정을 갖고 캐나다로 망명해 친북인사가 되면서 국제적 활동폭이 크게 축소됐다. ITF는 북한을 기반으로 활동했으며 장웅 북한 IOC 위원에 이어 리용선 총재 등 북한측 인사가 주도를 하면서 북한태권도의 온상이 됐다.

두 국제태권도단체의 역사적 변화속에서 정선용 사범같은 이는 아마도 힘든 시간을 보낼 을 것이다. WTF 이전 ITF 산하시절 해외로 파견된 정선용 사범은 이후 WTF의 일원으로 활동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ITF와의 관계가 ‘그늘’로 남아있었을 듯하다.

지난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북한 ITF 태권도시범단의 방한으로 다시 관심을 끈, 남북태권도 교류, 협력 증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토론자의 종합토론을 마치고 두 번째 질문자로 나선 정선용 사범은 아마도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가 된 남북한 태권도의 현재 모습과 굴절 많은 자신의 삶에 감정이 복받쳐 쓰러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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