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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 추계에술대 교수]100가지 방법으로 먹는다
상투를 튼 세 남자가 작은 개다리소반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거나 술을 따르고 있다. 여름휴가 중에 읽으려고 여행 가방에 넣어간 책의 표지 그림이다. 책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Manger cent faons’이고, ‘100가지 방법으로 먹는다’라는 뜻이다. 출판사 아틀리에 데 카이에(Atelier des Cahiers)가 한국 음식에 관한 문학 작품들(시 단편소설 수필 등 26명의 작가의 34개의 작품)을 19명의 번역가를 통해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2016년 11월 파리에서 출간한 책이다.

한류로 인해 잘 알려진 김치나 비빔밥 외에, 한국 음식과 독특한 추억에 대한 글들이 들어 있다. 박완서의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윤대녕의 ‘개’, 성석제의 ‘대식’, 곽재구의 ‘김치찌개 평화론’, 공광규의 ‘별국’,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 최일남의 ‘전주 해장국과 비빔밥’, 복효근의 ‘마늘촛불’, 이육사의 ‘청포도’, 피천득의 ‘맛과 멋’ 등이 들어 있다. 사실 ‘쥐식인’이라는 필자의 작품을 포함하여 어떤 작품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보려고 가지고 떠난 책이었다. 그런데 다른 작품을 하나씩 읽을수록 마치 이방인처럼 한국 음식의 색다른 맛과 향을 접하게 되었고, 심지어 잊고 지냈던 전통적인 맛과 추억의 일부를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여름휴가 책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유독 필자를 많이 웃겼던 시 한 편이 있었다. 시인 임보의 ‘마누라 음식 간보기’인데, 아내가 음식을 할 때마다 남편에게 간을 봐달라는 내용이다. 짜다고 하면 아내는 “밥하고 자시면 딱”이라고 대답하고, 싱겁다고 하면 “짜면 건강에 해롭다”고 대답해 사실 남편의 간보는 역할은 거의 무의미했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이자 이 시의 번역자인 벤자맹 주와노(Benjamin Joinau) 씨는 “음식이 영양분을 주고받는 이상으로 가족들의 관계 특히 부부의 사랑을 엮어주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시를 읽고 나서 문득 친구에게 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담 하나가 떠올랐다. 집안이 지극히 가난했던 탓에 어머니는 매일 달걀 하나만을 식탁에 올렸는데, 그것도 아버지 밥 속에 숨기는 방식이었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밥 속에 달걀 하나를 깨뜨려 넣고 밥으로 덮은 후 상에 올렸다.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아이들은 모르는 척 밥을 먹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아버지는 항상 밥을 삼분의 일쯤 남기셨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나면 여덟 명의 아이들이 서로 달려들어 달걀밥을 나눠먹곤 했다는 것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친구의 추억담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최근 터진 달걀 살충제 사건 때문이었을까. 식탁에서 달걀이 사라진 며칠을 보내다보니 달걀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까. 밥 속에 숨어 있던 달걀 하나로 아버지의 노고와 아내의 배려와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감사를 느끼던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부유한 식탁이나 가난한 식탁이나 비교적 차별없이 인간에게 자신을 내주었던 달걀이야 말로 정말이지 100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 달걀이라는 그 작은 존재가 식탁에서 사라지면 우리에게 100가지 이상의 음식이 그 맛과 멋을 잃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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