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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경제학 박사)]건설현장의 ‘노동존중’을 위하여
새 정부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노동존중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건설현장 노동의 현실은 어떨까. 아직도 일이 있을 땐 휴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하고, 없을 땐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 오늘 일을 하면서 내일 일이 불안하다. 일을 하고도 임금체불이 많다. 일당은 높은 듯 보이나 근로일수가 적어 연간 소득은 높지 않다. 빨리 빨리 쫓기다 보니 산재가 많다. 평생 집을 지었는데 정작 내 집은 없다. 사회보험 가입도 저조해 노후대책이 변변치 않다. 젊은 층이 줄면서 고령화되어 숙련인력의 대가 끊길 지경이다. 급기야 서민 일자리의 마지막 보루마저 불법 외국인력에게 넘어가고 있다.

이렇듯 노동존중에서 멀어진 이유가 뭘까. 근본 원인은 무한 저가경쟁의 수렁에 빠진 시장실패에 있고, 그 책임은 제도적 해결책을 만들지 못한 정부에 있는 듯하다. 건설업은 대체로 수주생산방식을 따른다. 수주가 돼야 생산이 시작되고, 수주금액은 모든 구성원이 받을 수 있는 상한액이 된다. 제 값을 받지 못하면 강자는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약자의 몫을 빼앗으려 한다. 도급단계가 길어질수록 약자의 몫은 더 줄어든다.

무한 저가경쟁의 근원은 어딜까. 발주자는 원수급자의 저가경쟁을 믿고, 원수급자는 하수급자의 저가경쟁을 믿는다. 그렇다면 하수급자의 저가수주 근거는? 바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 근로자의 저가경쟁이다. 여기가 무한 저가경쟁의 진원지다. 자국의 임금이 낮은 불법 외국인력이 많아질수록 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부족한 공사비에 맞추려니 무리한 공기단축, 저가 자재와 저임금 저숙련인력 투입 등이 많아진다. 이것은 산재(특히 불법 외국인력)와 부실시공의 증가로 표출되고 건설업에 대한 불신은 깊어진다.

근본적인 개선책은 뭘까. 건설현장의 노동존중을 이윤존중과 함께 구현하는 것이다. 제 값을 지불하되 엄격히 감독하고 중간의 누수를 막아 각자의 몫을 공정하게 배분하면 된다. 무한 저가경쟁의 진원지인 근로자간 저임금경쟁을 막는 데서 출발한다면, 문제는 아래로부터 풀리게 된다. 삭감할 수 없는 임금기준을 제시한다면 내국인 숙련인력을 우선 고용하게 되고, 정부나 발주자의 시장독점력과 입찰자의 저가경쟁으로부터도 공사비를 지켜낸다.

이것을 간파한 것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포함된 적정임금제다. 기능등급제(직업전망)와 전자카드(고용관리)가 결합된다면 근로환경이 개선돼 청년실업에 대한 근본적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몰라서 풀지 못했을까. 수차례 논의가 있었으나, 코앞의 득실에 집착하거나 단일 부처가 풀기 어려운 복합 사안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하지만 이제 그 암초를 넘을 만큼 꽤 큰물이 들어왔다. 범정부 차원의 일자리위원회 등을 통해 노사정이 큰 뜻을 모으면 큰 배의 노를 거뜬히 저어 나갈 수 있다. 신뢰 받는 건설업과 존경받는 건설인이 함께 사는 건설현장 노동존중의 나라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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