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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간 비가 내렸다…그순간 뒤엉켜버린 운명의 장난
연극 ‘3일간의 비’ 국내무대 초연
돌아가신 아버지 일기장 내용 통해
부모와 자식세대에 얽힌 진실찾기
3명의 출연배우 1인 2~3역 소화 눈길
난해한 대사·급작스런 결론은 아쉬워


하루의 일과 경험을 개인적인 느낌이나 생각에 따라 쓰는 글을 ‘일기’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이 남긴 기록은 후에 국보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산이 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남긴 글 역시 추후에 어떤 ‘진실’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한다. 여기 1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 한 남자 역시 어떤 진실에 다가서려 하고 있다. 지난달 개막한 연극 ‘3일간의 비’의 ‘워커’ 이야기다.

미국의 유명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가 지난 1997년 첫 선을 보인 ‘3일간의 비’는 초연 이후 20년 만인 올해 국내 무대에 처음 막을 올렸다. 배우로 유명한 오만석이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아 이번 작품의 연출가로 이름을 올렸다. 극은 1995년과 1960년대 서로 다른 두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유명 건축가 ‘네드’의 아들 ‘워커’가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담아낸다.


워커가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는 ‘1960년 4월 3일~5일, 3일간 비’라고 적혀 있다. 아버지의 생각을 적은 ‘일기(日記)’를 기대했던 워커는 너무도 건조하게 쓰인 ‘일기(日氣)’ 예보에 몇 줄에 실망한다. 이후 적혀 있는 글 역시 모두 하나같이 담담하고 메마른 단어들뿐이다. 특히 워커는 생전 아버지와 오랜 시간 동업했던 ‘테오’ 아저씨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 놀라워한다. 38살에 폐암으로 숨을 거둔 친구에 대해 네드는 그저 ‘테오가 죽어간다, 죽어간다, 죽었다’라고 건조하게 썼을 뿐이다.

1막은 이렇듯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 워커가 그의 누나 낸과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게 어딘가로 떠나버렸다가 불쑥 나타난 동생을 낸은 버거워하지만, 워커의 관심은 오직 아버지가 남긴 가장 값비싼 건축물 ‘제인웨이 하우스’를 상속받는 일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이 개입하는데 ‘테오’의 아들 ‘핍’이다. 네드는 워커가 갖고 싶어 했던 제인웨이 하우스를 딸도 아들도 아닌, 친구의 자식에게 물려줘 버린 것이다.

네드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2막에서 한 꺼풀씩 천천히 드러난다. 1막이 자식들의 사연을 다뤘다면 2막에서는 네드와 테오,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는 딱 3명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각각 1인 2~3역을 소화한다. 1막에서 아들 워커와 핍이었던 배우가 2막에서는 네드와 테오를 연기하는데,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이도록 대사 톤부터 목소리 크기, 태도, 몸짓 등을 변화시킨다.

2막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1막에서 알고 싶었던 진실을 뚜렷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공연을 보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퍼즐 맞추듯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극에서 쏟아지는 철학적, 문학적 대사와 곳곳에 숨어 있는 비유와 상징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극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1막과 달리 2막은 앞서 가졌던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해주지 못하고, 결말 역시 급작스럽게 끝난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 등은 아쉽다.

오만석 연출은 “원작의 내용이 현재 각색된 대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해 상당 부분 이야기를 재구성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한 점들이 남아있다. 물론 장면의 숨겨진 의미를 깨달아가고, 조각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어울리는 작품일 수 있겠다.

극이 이야기하려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극장에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장면을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묘하게 여운이 긴 연극임에는 분명하다. 최재웅, 윤박, 이윤지, 최유송, 이명행, 서현우, 유지안 출연. 9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관람료 4만~5만 5천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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