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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일시중단 vs 영구중단, 기로에 선 신고리 5·6호 공사 현장
-‘대통령은 하야하라’ 현수막, 지역 성난 민심 대변
-중소 협력사 대표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 토로

[헤럴드경제=이정주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읊었다는 그 시 같은 상황이에요.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지만 농부는 비를 바라는 것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이라 정부가 그 뜻을 잘 살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31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건설 중단 문제를 놓고 정부와 노조 및 지역주민의 대치국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토로했다. 

국민의당 탈원전대책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원전 중단 사태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신고리 원전이 있는 울산 새울원자력본부를 방문했다. 이날 오전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현장 방문을 시작으로 오후 지역주민들, 시민단체와 간담회 등의 일정도 이어졌다. 

신고리 원전 건설 현장 [사진=이정주 기자/sagamore@heraldcorp.com]
건설이 중단된 신고리 원전 5호기 [사진=이정주 기자/sagamore@heraldcorp.com]

이날 방문한 신고리 원전 5호기 공사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축구장만한 공터에 세워진 10여기의 크레인들이었다. 정부의 공사중단 지침 탓인지 현장 내 작업을 하는 근무자는 없었다. 원형의 구조물을 둘러싼 사각형의 공사 현장에서는 반쯤 채워진 시멘트 구조물 위로 철근들이 솟아나와 있었다. 바로 옆 6호기 공사현장은 중앙 원형 구조물이 들어갈 자리만 표시된 채 터를 닦는 과정에서 중단된 것처럼 보였다. 솟아나와 있는 철근들 위로 씌워진 붉은 색 비닐은 공사 중단으로 인한 철근 손상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원전 노조와 시공사, 협력업체 관계자 20여명과 간담회는 아마추어 정책 성토장 그 자체였다. 푸른색 조끼를 입고 참석한 노조 관계자들과 건설 협력업체 소장들은 정부의 탈원전대책을 두고 ‘대안 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이라며 작심한 듯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은 선제적으로 투입한 자재 처분, 원전 기술인력 유출, 금융 비용 부담 등을 두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지난달 31일 현장 관계자가 신고리 원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정주 기자/sagamore@heraldcorp.com]

김병기 한수원 중앙노조위원장은 “(정부는)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추세라고 하지만 지금은 선진국들도 원전을 추가하거나 재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발도상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도 진행 중이고 스웨덴의 경우 지난 2000년에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지금은 번복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협력사들도 자금 압박과 기술인력 위협에 대한 고충이 컸다. 취수관로 토공을 맡고 있는 홍인수 제일공사 소장은 “우리는 정부를 믿고 이 작업에 최소 5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투자해 참여했다”며 “공론화위원회에서 (중단 여부를)결정하는 동안 특수직 기술자들은 잡아둘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에 필요해 선투입한 자재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이라며 “저도 나이가 벌써 48세인데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수용 삼미정공 소장도 “공사 중단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인력 확보”라며 “이미 직원 중 일부는 이직을 해 공사가 재개 되더라도 새로운 기술자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울주군 주민들의 감정도 비슷했다. 공사 현장인 서생면 여기저기에 걸린 ‘한수원의 적폐 이사진은 자폭하라’, ‘대통령은 하야하라’ 등의 글귀는 지역 민심을 대변했다. 이상대 주민협의회장은 “여기 주민들은 원전을 끼고 40년을 살았다”면서 “신고리 5ㆍ6호기는 주민들이 국가에 헌신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유치했는데, 정권 바뀌고 대통령 공약 한마디에 지금 탈원전으로 가면서 중단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원전의 안전성은 그동안 언론에서 그렇게 검증해놓고선 이제 와서 주민들의 의견 무시하고 가면 누가 정부를 믿을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1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사무소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 [사진=이정주 기자/sagamore@heraldcorp.com]
지난달 31일 울산역에서 열린 울산시민운동본부와의 간담회 [사진=이정주 기자/sagamore@heraldcorp.com]

박의남 주민자치위원장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탈원전을 하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최소한 수급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짓고 있는 5ㆍ6호기를 중단하면 바로 탈원전이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건 마치 모택동의 말 한 마디에 결국 3000만명이 아사한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비슷하다”며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전문가들이 신중히 검증하지 않고 왜 이런 사태를 만드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일반 주민 이용남 씨는 “이건 지금 말도 안되는 짓을 대통령이 하고 있다”며 “지난 2013년도 신고리 5ㆍ6호기 고시될 때는 민주당과 대통령은 뭐하고 있다가 30%나 공사가 진행된 지금와서 중단하려고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어 “대통령도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정부의 입김이 못 들어가게 원전을 민영화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주민 간담회에서는 초반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일반 주민들이 발언을 신청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신고리 5ㆍ6 건설하라’라는 글귀의 붉은 조끼를 입은 이들은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나오면 중간 중간 박수를 치며 “신고리 5ㆍ6호기 중단하려면 1ㆍ2ㆍ3ㆍ4호기도 다 떼어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sagamo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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