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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책 속에서 찾는 ‘휴가의 여유’
드디어 휴가다. 집에서 되도록 멀리 떠나 자연에 파묻히든, 해변에서 빈둥거리든, 낯선 도시를 방황하든 자유를 만끽할 시간이다. 일년 중 고대하던 바로 이 때, 휴가지야말로 가장 철학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지중해의 영혼을 가진 철학자’, 장 루이 시아니는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쌤앤파커스)에서 굳이 휴가지에서 철학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로, 본능을 상기시킨다.

즉 일상의 갑갑한 옷을 벗어던지는 여름철 행락객의 태도에는 태양이 작열하는 그리스의 충동적인 기운이느껴지는데, 이는 바로 “경이로움을 품을 줄 알고, 사랑하고 읽고 쓰고 대화하고 걷는 일 따위에 몰두”하는 철학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느끼는 위안과 기쁨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조건을 한껏 느끼고, 존재를 실제로 체험해보게 된다.(…)여정이며 목적지가 어떤 것이든 여행의 진실과 의미는 여행이라는 ‘체험’을 통해서만 드러난다”(‘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에서)

오늘날 우리는 피로와 중독, 소비지상주의 일상 속에서 그런 사유하는 취미와 즐거움, 세상과 타인을 포용하는 법도 을 잃어가고 있는게 사실이다. 휴가는 바로 우리를 소외시킨 이런 것들을 물리치고 우리가 원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장 루이 시아니 지음, 양영란 옮김
쌤앤파커스
시아니는 바로 이런 둘의 본질적 특성을 잡아채, ‘휴가를 사유 안’에, ‘사유를 휴가 안’에 슬쩍 밀어넣는 테크닉을 구사한다. 해변에서 철학하기를 통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어떻게 좀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는지 사색하는 방법을 들려준다. 그에 맞춰 책은 떠나다, 도착한다, 놀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옷을 벗는다, 높이 올라간다, 명상을 한다, 읽는다, 엽서를 쓴다, 걷는다, 웃는다, 사랑한다, 모래 위에서 논다, 햇빛을 받는다, 다시 돌아간다 등 우리가 휴가지를 향해 떠나는 순간부터 이뤄지는 일련의 행위들을 따라간다.

가령 ‘떠난다’는 행위 속에는 우리의 본능적 속성이 들어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몸에는 신선한 공기가 퍼지는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떠남’은 보다 나은 곳을 꿈꾸는 우리의 몽상과 이상 속에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일상 속에서는 지역, 신분, 문화라는 철조망에 갇혀 불안하게 보았던 대상들을 여행길에서는 기꺼이 그들과 사귀려 든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다른 곳에 가는 것과 동시에, 나 아닌 또 다른 존재가 된다”.

그리스는 달랐다
백가흠 지음
난다
백가흠의 에세이 ‘그리스는 달랐다’(난다)는 작가가 2011년 겨울과 2016년 여름, 두 해에 걸쳐 각각 3개월 가량 머문 그리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그 곳에 가 머물다 떠나오고 다시 찾아간, 그리스의 구석구석을 걸어낸 충일감이 스물 한 편의 짧은 소설을 낳았다. 그곳에서 작가는 “우리가 성급히 떨쳐버린 가장 중요한 무엇”을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찾아 구석구석을 걸어낸다. 그리고 작가는 여행자의 시각에 포착된 시공에 인물을 내세워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소설형식으로 만들어냈다.

첫 소설 ‘하늘에 매달린 도시’는 일상과 여행의 길항(拮抗)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일상에 지친 J는 9년만에 다시 그리스를 찾는다. 유럽인들이 태양아래 몸을 내던지며 즐기는 것과 달리 여행 한달째 접어들면서 J는 한국과 다름없는 무료함에 빠진다. 아테네를 떠나 북쪽으로 길을 잡은 J는 메타오라라는 곳을 거쳐가게 된다. ‘공중에 매달린’‘하늘아래 바로’라는 뜻을 지닌 메타오라에서 그는 9년전 겨울, 이상한 경험을 했다. 폭설에 갇혀 걷다 등불을 발견해 도착해보니 불빛은 없고 호텔이 서 있었다. 그는 방 하나를 얻어 금세 잠이 들지만 목이 졸리는 악몽에 깨어 날이 밝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내려온다. 그 곳을 다시 찾아간 J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곳에 호텔 같은 건 없다. 큰 바위가 위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짧은 소설들은 여행의 긴 서사를 몇 줄로 응축해낸 것처럼 높은 밀도를 지닌다.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김혜영 옮김
북라이프
프랑스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꼽히는 올리비에 블레이즈의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북라이프)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헝가리까지 두 발로 기록한 여행노트다. 루나오비터 1호가 찍은 사진, ‘지구돋이’를 본 후 지구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작가는 2010년부터 1년에 한 달씩 단계적으로 특별한 걷기 여행을 하고 있다.

그의 도보여행은 낭만이나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짐을 챙기면서 포기할까란 쪽으로 기우는 마음, 기차안의 더럽고 불쾌한 풍경, 여행의 고단함을 그는 노골적으로 털어놓는다. 시작은 온통 투덜댐이다. 시골풍경도 온통 마뜩찮다. 검고 더러운 시골의 자갈길, 죽은 나비, 짐승의 썩은 시체, 짓밟힌 곤충, 빈 담뱃값, 나사못,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깨진 파편 등이 어디에나 있었고 화물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뜨끈뜨근하고 먼지 섞인 바람 때문에 도랑으로 빠질 뻔한 적도 있다고 그는 적었다. 이정표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보면 더욱 더디게 느껴지고 폭발할 지경이다.

어느 작은 마을에선 잠잘 곳, 물 한 모금 얻지 못해 심한 고통을 겪기도 하고, 몸이 이곳 저곳 아파오지만 2주가 지나면서 그는 건강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슈퍼맨이 된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자신을 둘러싼 너그러운 자연과 심각한 사랑에 빠져 버린다. 여행 노트에는 동물들의 사소한 것까지 적은 내용들로 가득차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적은 것들이 늘어난다.

그의 여행, 모험은 현재 진행형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나에게 다리가 있는 한, 심호흡 할 수 있는 폐가 있는 한, 나는 세계를 탐험하고 싶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풍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각할 건 바로 나의 열정에 내가 응답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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