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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사회 ‘상처입은 용’ 윤이상을 무대에 올리다
‘유럽 5대 작곡가’로 해외에선 극찬
국내선 이념논란에 예술적평가 못받아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재조명 활발
경기도립극단 신작연극서 생애 부각
유작 ‘화염 속의 천사’ 세번째 연주도수

통영 동백나무 한 그루가 그의 묘비 앞에 심어졌다. 헌화한 꽃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적혔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그 일행은 고인을 생각하며 짧은 묵념을 더했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그러나 간첩으로 몰려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고(故)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 앞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있었던 일이다.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윤이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추앙받는 작곡가다. 그는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 음악어법과 결합하여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라는 유럽 평론가들의 평을 받았고, ‘유럽의 현존 5대 작곡가’로 분류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 1960년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는 고국땅을 밟지 못했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사진제공=경기도문화의전당]

그러나 국내에선 1960년대 독일 유학생 시절에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겠다며 방북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기소되면서 줄곧 이념 논란에 시달렸다. 그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전공자들 사이 알려졌을 뿐이다. 성악을 전공한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에 대해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 말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숙 여사의 묘소 방문으로 더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 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다. 공연계에서도 올 초부터 이를 기리는 무대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서울시향은 지난 3월 윤이상을 추모하며 그의 주요작품 중 하나인 ‘단장(短章)’을 연주했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이어진 ‘통영국제음악제’에선 매일 1~2곡의 윤이상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엔 그의 생애를 다룬 연극과 ‘금지곡’으로 인식됐던 그의 유작곡도 실연으로 찾아온다.

경기도립극단은 7∼9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윤이상의 일대기를 다룬 신작 연극 ‘윤이상: 상처 입은 용’을 선보인다. 연극에서그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은 ‘상처 때문에 하늘을 마음껏 날지 못했다’는 윤이상의 태몽에서 출발한다. 베를린, 서울, 북한을 지나 통영과 일본을 건너 다시 독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윤이상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 때문에 예술가로서 성취도 상처 입어야 했던 그의 삶을 7세, 21세, 29세, 35세, 47세, 50세 등 연령대별로 재연한다.

예술감독을 맡은 양정웅은 “정치적 이유로 조명되지 않았던 윤 선생의 현대사적 굴곡과 개인의 삶에 대해 인간적 측면, 그리고 예술적 측면을 모두 다뤘다”며 “시류에 맞는 신선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연출을 맡은 이대웅도 “공연계에서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이 유의미하다”며 “연극 타이틀인 ‘상처입은 용’은 태몽이자 동시에 선생 그 자체다. 우리 역사와도 많이 닮았다”고 했다. 20세기 근현대사를 훑어보며 이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게 이 연출가의 설명이다.

더불어 그의 유작으로 알려진 ‘화염 속의 천사’도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로 오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무대에 오른다. 이 곡이 국내에서 연주되는 건 이번이 세번째(서울시향 1999년ㆍ부산시향 2001년)다. ‘화염 속의 천사’는 독재정권 시절 분신 자살로 민주주의의 갈망을 표현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95년 발표한 교향시다. 소재와 내용 때문에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인식 됐고, 서울시향의 국내 초연 당시에도 ‘정치적’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코리안심포니는 “이 교향시를 실연으로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며 “반평생 조국을 잃은 유랑민으로 살다간 윤이상의 삶을 떠올리며 감상한다면 그 의미가 더 깊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무게가 남다른 작곡가이니만큼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공연은 외국에서도 이어진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실내악 앙상블이 참여하는 세계적 음악축제인 무직페스트 베를린은 경기필하모닉을 초청, 윤이상의 탄생일인 9월 17일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그의 교향곡인 ‘예악’, ‘무악’등을 공연한다. 윤이상의 제자인 소프라노 서예리가 호소카와가 협연에 나선다. 페스티벌 측은 이날 하루를 ‘윤이상 데이’로 정하고 그의 작품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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