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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두테르테…마초 지도자 왜 먹히나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공유화
세계화 폐해로 차별·양극화 심화

환상이 거짓임을 알게된 유권자
진실보다 진실같은 발언에 경도

민주주의 퇴행 우려 세계지성 15인
자유·평등 기반 새연결사회 제시

테러와 외국인 증오, 이슬람 공포, 포퓰리즘, 우경화, 브렉시트, 국가주의…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집약한 단어들이다.

브렉시트는 지역주의로의 전환의 지표로, 트럼프의 당선은 진보 운동에 대한 퇴행운동의 승리를 가리키는 신호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 외에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의 두테르테, 터키의 에르도안, 인도의 모디, 헝가리의 오르반, 폴란드의 두다 등도 이 리스트에 속한다. 국가주의를 내세운 포퓰리즘의 승리,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평가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을 서슴없이 내뱉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들에게 오늘날 시민들은 왜 국가를 내맡기는 것일까.

지난 1월 타계한 세계적인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을 비롯,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브뤼노 라투르 파리정치대 교수 등 15의 세계 지성들은 이 현상을 ‘자유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규정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깊이있게 들여다봤다.

여러 언어로 번역돼 15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거대한 후퇴’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약화된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꼽았다. 바꿔말해 국가주의, 우익 포퓰리즘의 대두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는 빠르게 세계 경제 구조를 바꿔놓았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 기업을 더 작은 회사들의 가치사슬로 만드는 구조조정, 정부역할 축소,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금융의 지배가 가속화하면서 무한경쟁사회로 내몰았다. 불확실성의 증대, 정부의 역할 축소는 양극화, 개인의 자존감 저하, 불안, 소외감과 함께 불신과 분노를 키웠다는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칼 폴리니는 일찌기 ‘거대한 전환’(1944년)에서 노동, 토지, 화폐의 무분별한 상품화가 결국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 세계화는 세계경제질서를 한 줄로 엮어버렸다. 각 국가의 경제주권을 고스란히 시장에 내줌으로써 주권을 행사하는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국가주의가 문화주권을 내세우며 부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세계는 빠르게 통합됐지만 이에 걸맞는 질서와 세계시민주의는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 머문 채 인종과 국가, 종교 갈등이 심화돼 문명 충돌로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아르준 아파두라이 뉴욕대 석좌교수는 새로운 우익 포퓰리즘의 등장을 지지자와 지도자의 우발적·부분적 연결로 본다. 최근 급부상한 지도자의 경우 외국인 혐오, 가부장적 권위주의 경향이 있는데, 이들 지도자의 야망과 전략이 지지자의 두려움, 상처, 분노와 결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대중은 자신들을 대변해주지 않는 기왕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들을 잘 대변해준다고 믿는 포퓰리스트들에게 기댄 것이다. 이들의 집권이 민주주의 방식이라는 선거를 통해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독일이 어떤 선택을하느냐가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데 결정적임을 역설한다.

바우만은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문제들은 요술지팡이나 지름길, 즉각 치유가 통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을 타당한 대화상대로 보고 다른 문화 출신자들을 경청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대화의 문화를 만들어야 해결이 가능하다며, 이를 반영한 학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반 크라스테브 소피아 불가리아 소피아 자유주의전략연구소장은 최근의 혼란의 배경으로 의사소통의 혁명을 꼽는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은 사실상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고 검열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며, “동시에 난해한 음모론이 놀랄 정도로 확산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열의 종말은 탈진실, 즉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를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탈진실 정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에서 민주주의 정부들이 대중에게 환상을 확산시키는 기술과 전략을 발전시킨 결과다. 대중들은 환상이 거짓임을 알게되고 반감과 불만이 점차 확산되면서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 대신 진실처럼 느껴지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시장과 인터넷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의 접촉을 좋아하고 이방인은 배제하는 속성을 통해 오히려 사회결속력을 약화시켰다. 더 연결됐지만 덜 통합된 세계, 단절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저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포용과 관용,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연결을 꿈꾸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 사회에 경제적·도덕적 문제가 가중되어 해결에 대한 요구가 강렬해지면 그 사회는 결국 전통적인 저항과 반발을 낳게 된다.(…)지붕 위에 있는 비둘기(세계공동체 민주주의)를 잡으려다가 손안에 있는 참새(국가 민주주의)를 놓친 건 아닌지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할 때”라는 볼프강 슈트렉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장의 말은 세계가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들려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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