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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의 권위①] 국정농단 재판 골칫덩이된 ‘방청객 소란’
-소란 방청객 퇴정조치에도 법정 소란 점점 심해져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저는 대통령님의 딸입니다…엄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방청객이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근혜(65) 전 대통령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재판 내내 표정변화가 없던 박 전 대통령이 고개를 돌렸다. “미친X 아니야! 저X 잡아야돼” 박 전 대통령 지지자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들이 고함쳤다. 삽시간에 방청석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3일 오후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 전 대통령 재판 3개월 째, 방청객들의 법정소동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30여 명의 열성 지지자들은 매주 4회 재판이 열릴 때마다 방청석을 지킨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드나들 때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외친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법정관계자들의 안전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이들은 거부한다. ‘판사가 들어올 땐 일어나고 대통령님이 들어올 땐 못 일어나느냐’가 이들의 논리다. 


법정은 스포츠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이라도 나오면 어김없이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온다. 지난달 5일 ‘국정농단 폭로자’ 중 한명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사람을 매도하지 말라”며 변호인단에 소리치자 방청객들은 ‘사기꾼. 망나니’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지난달 22일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의 변론에 “맞습니다”라고 소리친 방청객은 법정에서 쫓겨났다.

정치인들의 재판에서 지지자들이 소란을 피우는 건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2015년 1월 내란선동죄로 징역 9년을 확정받자, 지지자들은 법정에서 “대법원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퇴정을 거부하고 법원 직원들과 대치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이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55)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자, 방청객들은 “판사를 찾아내라”며 난동을 부렸다.

최근 재판부는 소란을 피운 방청객을 퇴정조치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구치소에 구금되는 감치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재판부는 법정 안팎에서 폭언, 소란 행위 등으로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 위신을 훼손한 사람에게 1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정도가 심하면 20일 이내 감치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달 16일부터 소란행위를 한 방청객들을 법정에서 내보냈지만, 지난 3일에는 하루 3번 연이어 퇴정명령을 내리는 일도 생겼다.

국정농단 공범들의 재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 열린 우병우(50) 전 민정수석 재판에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38) 씨가 증언대에 서자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장 씨는 이모 최 씨의 태블릿 PC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제출하는 등 ‘특검 도우미’로 불렸다. 검찰은 “증인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라며 반발했고 재판부는 방청객 두 명을 퇴정조치하며 “다음재판부터 허락받지 않고 방청석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감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보다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란행위를 한 방청객을 감치시키거나 과태료를 물려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법원이 비슷한 사건에서 방청객을 감치시킨 전례도 있다. 지난 2013년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선동죄 첫 공판에서 방청객들이 “이석기 살려두면 나라망한다”고 외치자 재판부는 곧바로 감치 명령을 내렸다. 지난 20009년 ‘용산 참사’ 법정에서 ‘X’표를 붙인 마스크를 쓰고 일어나 침묵 시위를 한 방청객 4명은 나흘 동안 감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방청객을 감치시키거나 과태료를 물리기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방청객을 감치시킨다면 자칫 재판부가 선입견을 가지고 사건을 심리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위반 행위가 있던 날에 따로 재판을 열어 감치 혹은 과태료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재판부가 본 재판에 이어 감치재판까지 해야한다면 국정농단 사건 심리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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