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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양태영 대표·서준섭 대표·이인섭 이사 ①] 인생2막 개척 ‘혁신의 땅’연 금융 삼총사
황무지 ‘P2P금융’을 옥토로…누적 대출액 1조원 ‘알짜금융’으로 만든 양태영 대표·서준섭 대표·이인섭 이사

바보도 보이는 것은 말할 수 있고, 몽상가도 꿈은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용기 있는 첫 발을 내딛는 건 이성과 열정을 갖춘 도전자다. 도전자가 많은 곳에 혁신이 있고 발전이 있다. 최근 2~3년 사이 금융투자업계는 ‘개인간’(Peer to PeerㆍP2P)금융이란 혁신 실화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현재 P2P금융 누적 대출액은 1조원. 시중 단기부동자금이 1000조원을 넘어선 시대에 크지 않은 비중이다.

하지만 수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잠재력이라, 또 누군가는 성장가능성이라 부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금융의 존재 그 자체일 것이다.


▶낯설어서 더 힘들었던 출발=출범 2년 6개월 만에 취급액 1300억원, 연체부도율은 제로. 부동산 전문 P2P금융서비스 업체 테라펀딩 양태영 대표이사는 1조원(테라는 10의 12제곱으로 1조를 뜻한다) 규모로 펀딩을 키우겠다는 야심을 차곡차곡 실현하고 있다. 지난 2월 P2P플랫폼 비욘드를 선보인 서준섭 대표이사 역시 최단기간 누적대출액 100억원을 돌파하며 질주하고 있다. P2P금융의 비전과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에 끌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어니스트펀드에 합류한 이인섭 전략총괄이사는 신한은행, KB인베스트먼트, 한화인베스트먼트 등 기존 금융권으로부터 92억원의 투자를 받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일을 그리고 있다.

더 큰 앞날을 바라보는 이들이지만 오는 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서준섭 대표는 회사 자본금 20억원을 100% 본인이 출자했다. 인생을 건 셈이지만 첫걸음부터 삐끗했다. 당초 서 대표는 카드론 같은 신용카드대출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출이자를 30%인하해 NH농협은행 대출로 대환해주는 ‘써티컷(30CUT)’을 구상했다. 기관투자자까지 섭외를 마쳤다. 하지만 지난달 말 관계당국이 기관의 P2P투자를 불허하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물거품이 됐다. 그는 “비욘드플랫폼은 한 번 망했다 또 한 번 창업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양태영 대표의 고생담도 만만치 않다. 그가 아이템을 고민한 건 2013년 3월이었다. 미국의 부동산 크라우드 펀딩 모델을 본따 한국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당국의 유권해석을 기다리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기존엔 없던 시장,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에 대한 모호한 판단이 이어지자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사업모델 자체가 낯설다보니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현재 P2P금융은 대부업으로 분류돼 있다. 광고에 유명 연예인이 나왔다 여론의 뭇매를 맞을 정도로 대부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기다.

이인섭 이사는 “2015년 일주일 동안 모객을 했는데 4000만원밖에 모이지 않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40억짜리 상품이 완판되는 걸 생각하면 100분의 1이었던 셈”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말 잘 나가던’ 사람들=되돌아보면 이들의 출발은 순전히 ‘사서 한 고생’이다. 서준섭 대표는 1991년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전무까지 올랐다. 제도권의 탄탄한 지원을 받던 서 대표는 허허벌판에 섰을 때 기분을 ‘정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회계법인에 있을 때는 백화점에 있었다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시장판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기꺼이 밑바닥을 자처한 것은 일개 개인으로서 (제도권 금융이 하던) 금리인하를 할 수 있다는데 충분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및 신용회복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느낀 정부 역할의 한계를 민간 영역에서 맡아 개선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서 대표는 “캐피탈이나 저축은행은 경쟁상대가 없으니 충분히 낮은 금리가 가능한 사람도 쓸데없이 금리를 더 많이 내야 했다”며 “그런 제도권에 들어가서 한판 붙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HSBC은행 부산지점 여신센터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영업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양태영 대표는 경매시장에서 호되게 데인 경험이 자산이 됐다. 그는 첫 경매 낙찰물건을 3개월 만에 팔아 1000만원을 벌었다.

이후 호기롭게 경매 전문가를 꿈꿨지만 다른 경매건으로 소송을 5년이나 벌여야 했다. 쉽게 덤볐다 된통 맞은 셈이다. 이후 그는 “실무부터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경매를 하다보니 소형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금융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인섭 이사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를 시작으로 컨설팅회사 매킨지 프랑크푸르트 지사에 근무하는 등 줄곧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한국으로, 그것도 생소한 P2P분야에 뛰어들러 간다고 하자 맥킨지 동료들도 의아해했다. 당연히 보수도 절반 이하로 깎였다.

이 이사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당시 독일 금융사들의 고민거리는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 속에 사업을 지속할 길을 찾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정보통신기술(IT)과 금융의 결합으로 은행 고유의 업무들이 점차 비금융사로 넘어가는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핀테크 기업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 이사는 “단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변화 자체에 몸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일찌감치 P2P금융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불모지’라는 게 오히려 그에겐 매력이었다.

▶이제 시작...대지원망(大志遠望) =이들 중 누구도 현재 자신의 모습을 성공이라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성공은 영원히 불가능 할 수도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고, 한계가 없는 분야에서 성공이란 말은 안주의 손쉬운 표현에 불과할지 모른다.

서준섭 대표는 “기존 금융회사는 엄격한 관리감독으로 정해진 일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다변화가 가능하고 더 다양한 산업으로 나갈 수 있다”며 “그런 열린 확장성이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P2P금융이 현재의 대출플랫폼을 넘어 시장의 성숙기가 되면 이합집산을 통해 제대로 된 금융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플랫폼의 생명은 유저(사용자) 확보”라고 주장했다.

양태영 대표는 ‘부동산 P2P금융의 선도자(first mover)를 꿈꾸고 있다. 다양한 상품이나 업권 확장보다는 중소형 부동산시장의 가능성에 최대한 집중해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는 “100%중에 이제 5% 왔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인섭 이사는 중장기적으로 대체투자 플랫폼이 되는 것을 회사의 목표로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신뢰를 쌓기 위해 보수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내놓지만, 부동산뿐 아니라 점차 자산 다변화를 통해 고객에게 다양한 투자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년과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다”며 “일부는 험난하기도 했고 다이나믹하기도 했지만 가야할 길이 많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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