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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핍박한자들을 용서하라” 이곳은 기독교 성지였네!
한국전쟁때 공산주의자들 교인48명 학살
이판일 장로 유지따라 가해자 후손 포용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말은 비단 삼별초 항전, 임진왜란, 동학혁명 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호남의 기독교는 구한말 이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을때 실의에 빠진 민중을 달래고 국난 극복의 의지를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호남에는 유난히도 기독교 순교 성지가 많다.

기독교도 집단 순교는 많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 뜻있는 순례자들이 나서면서, 48명이 순교한 임자도 진리교회와 이웃들을 살리고 온몸으로 공산군의 총칼을 맞고 숨져간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증도)에는 국민과 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리포구에서 승용차를 타고 내륙 방향으로 5분만 가면 닿는 진리교회는 큰 팽나무가 우뚝 서 마을과 교회를 지키고 있다. 이 곳에서 1950년 10월5일 이판일 장로 본인 등 성도 48명이 공산군과 이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민들에 의해 희생됐다. 1950년 한국전쟁때 국군 유격대가 몰려온다는 소문에 공산군들은 기독교도들을 끌고 닥치는대로 끌어다 살해했다. 이 장로는 죽음 직전까지 성도들의 영혼을 지키고 악도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이판일 장로의 ‘용서하라’를 유지에 따라 교회는 그후 가해자 후손도 포용한다. 지금 임자도 대파밭 벌판 한켠 순교지엔 ‘용서하라’는 글의 비석<사진>이 세워져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진리교회는 문준경 전도사(1891~1950년)가 복음을 전파한 곳이다.

문 전도사는 여성의 몸으로 호남지역 100여개 교회를 개척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녀 역시 1950년 가을 퇴각하던 공산군에 성도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사람들을 도망시키고, 그들을 대신해 악도들의 총칼을 받아 순교했다. 신앙적으로 모범을 보인 문 전도사는 의사와 산파로서 사람들을 구제했고, 남들 한켤레 신발을 신을 때 아홉켤레나 헤질 정도로 발품을 팔아, 순교하던 60세 되던 때까지 사랑과 복음을 전했다.

그녀가 순교한 증도엔 기독교인이 90%에 달하고, 신안 전체의 기독교 복음화율은 35%를 넘는다고 한다. 문준경 전도사는 일제 때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해 수차례 고문을 당했다. 순교기념관 뒤편 상정봉에 오르면 한반도 모양의 해송 숲을 굽어볼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앞둔 지금, 순교자들 역시 피로써 대한민국을 지켰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크리스찬 성지순례 프로그램은 한국드림관광이 운영중이다. 

함영훈 여행전문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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