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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창업혁명, 플립을 許하라] 해외로 간 ‘스타트업’…‘글로벌 스타’되어 돌아온다
절차 복잡하고 소요비용 막대
거액 투자유치 눈앞에서 놓쳐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 美의 3%

양도세 감면·법무상담등 지원
이제 글로벌 벤처로 나아가야


갈라파고스처럼 꽉 막힌 국내 투자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세계 벤처캐피털(VC) 투자의 80%가 미국과 중국에서 이뤄지는 가운데(총 투자액 1358억달러 중 1040억달러ㆍ2015년 영국 프레킨), 해외법인의 본사 전환을 뜻하는 ‘플립(flip)’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과 중국의 VC는 투자 전제조건으로 본국으로의 플립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소요 비용도 커 투자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진출을 꾀하는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플립을 지원할 금융ㆍ조세ㆍ법무 담당 정부인력을 확충하고, 플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액의 세금을 감면 또는 유예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통해 세계 창업 시장에서 한류(韓流)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유망 스타트업이 본사를 해외로 옮기면 국내 일자리와 세원(稅源)이 감소하게 되는데, 여기에 정부 지원을 쏟아붓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과연 플립은 우리 창업 생태계에 득이 될까, 독(毒)이 될까. 현장의 사례와 목소리를 중심으로 ‘신(新) 창업혁명’의 길을 모색해본다.


▶플립은 스타트업 세계화의 필수조건=귀로 말하는 이어셋 ‘리플버즈’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타트업 ‘해보라’는 지난 2015년 미국 VC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실패했다. 리플버즈는 사람의 이관(耳管)에서 나오는 소리를 직접 포착하기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도 정확한 의사소통과 명령어 전달이 가능하다. 별도의 마이크 없이 작은 이어셋 하나만으로 음성 재생과 인식이 모두 이뤄지는 것도 장점이다. 리플버즈와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시스템의 결합 가능성을 눈여겨본 실리콘 밸리의 한 VC는 15억원 규모에 이르는 초기 투자를 제시했지만, 해보라는 모든 투자논의를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VC가 투자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플립을 완수하기에는 보유한 자금과 법무ㆍ세무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신두식 해보라 대표는 “플립 과정에서 VC 투자 이후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분을 반영한 수억원의 양도세가 붙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주식을 현금화할 의사도 없고, 매출과 이익의 대부분을 사업에 재투자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법무ㆍ세무 상담에 들어가는 비용도 수천만원에 달해 결국 투자유치 자체를 무산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제품을 양산하고 해외 융복합 시장을 개척할 천금 같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플립은 해외법인을 본사로 만들고, 한국법인을 자회사로 바꾸는 개념이다. 한국법인 주식을 해외법인에 출자하고, 주주들은 대가로 미국법인 주식을 갖게 된다. 현지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관리ㆍ육성하기 원하는 해외 VC들은 본사 이전을 투자 조건으로 제시하는 추세다. 하지만 매출이 일부 발생했거나 VC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은 주식가치가 창업 당시보다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국법인 주식 처분 과정에서 주식가치 차익만큼의 양도세가 발생하는 이유다.

창조경제 성공사례로 손꼽혔던 모바일 동영상 솔루션 스타트업 비디오팩토리 역시 같은 문제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투자환경에 정통한 김승현 울랄라팩토리 CMO는 “알려진 사례 외에도 플립 시 발생하는 세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스타트업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고속성장 유도하려면 플립 정책적으로 지원해야”=해외진출을 꾀하는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정부가 스타트업의 플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커지고 있다. 지원 요구가 집중되는 항목은 양도세다. “투자가 절실한 창업 5년 이내의 스타트업에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거나, 회사 성장 이후로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미뤄줘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익명을 요구한 스타트업 전문가 A 씨도 “국내 VC 투자액이 2015년 18억 달러로 미국(590억 달러)의 3% 수준밖에 되지 않는 가운데, 플립을 통한 해외투자 유치 외에는 돌파구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 투명성 제고를 이유로 지주사 전환 대기업에 ‘주식 양도차익 과세이연’ 혜택을 주는 것을 고려하면,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도 같은 조치를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A 씨는 이어 “한시적으로 플립 세제지원을 시행해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장을 이끄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큰 규모와 해외 네트워크를 갖춘 VC를 국내에 육성하거나 끌어들여 점차 ‘투자 자급’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투-트랙 해법을 제시했다. 급한 불을 먼저 끄자는 것이다.

이처럼 플립이 창업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플립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묘수’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역ㆍ중소기업 업무 소관기관의 업무보고가 진행된 지난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 “플립에 대해 코트라는 찬성, 중소기업청은 반대하는 등 기관별 입장이 다른 것이 문제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의 고민이 방치되고 있다”며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지 못하면 존폐 기로에 서게 되는 만큼, 정부가 플립에 대한 일관된 방침을 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정책 디자인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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