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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가정의 달에 곱씹어 본 ‘가족’
59년 만에 침묵 깬 연극 ‘가족’

OO한 가족, 가족의 OO도 아닌 그저 ‘가족’이다.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연극 ‘가족’은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에 깊이 파고들어 그 본질적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가족은 내게 긍정적인 의미인가 혹은 부정적인 의미인가, 가족 속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가족 구성원과 나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맺어져 있나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가족’은 국립극단이 우리 역사의 근현대극을 발굴해 현재의 무대에 다시 선보이는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제1회 국립극장 장막희곡에 당선돼 1958년 시공관에서 초연된 이후, 명동예술극장으로 명칭이 바뀐 같은 극장에서 무려 59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됐다. 


해방 직후 제헌국회부터 6·25 전쟁 등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극은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의 비극을 그린다.

해방 전 사업으로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던 아버지 ‘기철’은 ‘종달’ ‘종수’ ‘애리’ 삼 남매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한다. 그러나 해방 후 기철이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연달아 낙방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고, 고리대금업자 ‘임봉우’에게 빚 독촉을 받기에 이른다.

극의 시작은 아버지 ‘기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앞서 임봉우가 술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형사는 평소 많은 빚에 시달린 기철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해 조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사실 작품의 주인공은 장남 ‘종달’인데, 이 모든 사건을 지켜보는 그의 심리와 그가 기억하는 과거의 사건들이 연이어 전개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기철은 삼남매 중 유독 첫째 종달에게 큰 기대를 건다. 자기 허락 없이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게 막고, 종달의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크게 화를 낸다. 늘 아버지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던 종달은 스물이 되고 서른이 넘어서도 마음이 덜 여문 아이처럼 미성숙한 존재로 성장한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에 도전할 만큼 야망이 컸던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무너져 조롱을 당하자 그를 산처럼 여겼던 종달은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극의 마지막 10분 살인사건에 관한 비밀이 풀어지고, 종달이 30여 년간 참아왔던 울분을 가족 앞에 터트리는 장면은 속이 시원하면서 동시에 마음을 아리게 한다.

종달의 심리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그에 맞춰 들리는 음향 효과와 창문, 문이 있는 집 모양의 무대 세트가 연극성을 극대화한다. 마지막 장면 배우들이 쏟아져 내릴 듯 무대의 각도가 점점 가팔라지는 연출은 특히 인상적이며, 종달 역을 맡은 배우 이기돈의 열연 역시 여운을 남긴다.

구태환 연출은 ‘가족’에 대해 일그러진 부자 관계를 돌아보는 한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 말하기도 했다. 급변하는 오늘날 사회 속에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 각 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59년 만에 침묵을 깨고 나온 ‘가족’의 귀환이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2017년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할 시기적절한 귀환이다. 5월 14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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