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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이 연출·제작·주연까지…듣도 보도 못한 ‘황당 공연’ 있었네
대학로서‘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객석 의견 내용에 반영하는 즉흥극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은 벌써 오래 전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인 ‘프로슈머(prosumer)’를 처음 사용했다. 프로슈머는 소비는 물론 제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에 직접 관여해 소비자의 권리를 드러낸다. 시장에 나온 물건을 그저 택하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능동적 소비자인 셈이다.

최근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관객들은 창작자와 배우들이 만들어낸 공연을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단계부터 의견을 내거나 적극적으로 피드백해 이미 공연이 올라간 뒤에도 수정 및 보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난 14일 개막한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공연 중 배우들이 객석의 의견을 받아 곧바로 극에 반영하는 즉흥극이다. 극장을 찾은 100여 명의 관객이 그날 공연의 작가 겸 연출, 제작진이 돼 주인공, 상황, 제목, 결말 등을 설정해 매회 예측 불가능한 공연을 완성해간다.



이러한 즉흥극은 이미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는데, 이를 본 김태형 연출은 ‘우리 관객과도 함께 즐기면 재미있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기획했다. 처음, 중간, 끝 이야기의 기본 뼈대와 뮤지컬에 필요한 넘버 등만 정해두고, 이외의 상황은 대부분 그날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와 객석에서 실시간으로 결정된다.

관객의 이름과 사는 곳, 다니는 직장, 하고 싶은 말 등을 엮어 재치 넘치는 아카펠라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극 중 어드벤처 뮤지컬 전문 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의 공연이 펼쳐진다. 관객은 뮤지컬의 장르뿐만 아니라 주인공 이름, 장소, 제목, 명대사, 캐릭터의 특징 등을 마음껏 설정할 수 있다.

기자가 공연을 본 날의 장르는 누와르, 18살의 플로리스트 ‘김탱수’가 어린왕자의 장미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이 그려졌다. 꽃을 잘 피우는 능력을 갖췄지만 심한 꽃 알레르기를 앓고 있고, 심각한 길치인 김탱수는 여러 위기를 맞이하다 꿈을 성취해낸다.

멋진 아리아나 웅장한 합창, 화려한 안무, 기가 막힌 조명 하나 없는 이 황당한 콘셉트의 공연은 의외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다. 듣도 보도 못한 기막힌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다른 작품에선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와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다른 연습 과정보다 이 작품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는 배우들은 다소 황당한 관객의 요청도 재치있게 받아내며 극을 이끌어간다. 무대 위 ‘연출’ 역으로 함께 하는 민준호, 김태형 연출은 관객들이 낸 아이디어를 ‘괜찮은 공연’으로 풀어내기 위해 즉각적으로 생각을 더해 배우들에게 다양한 연기를 주문하기도 한다.

물론 극의 기본적인 틀이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즉흥극인 만큼 관객들의 여러 가지 의견을 엮다 보면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공연은 그날의 관객들이 함께 만든 것이 아닌가. 그날의 웃음과 그날의 즐거움까지 모두 관객들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프로슈머의 뮤지컬이다. 이영미, 박정표, 홍우진, 이정수, 김슬기, 정다희, 민준호, 김태형 출연. 오는 5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관람료 4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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