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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이 책!] 이땅의 대리인생들에게…한 대필 전문 유령작가의 깨달음
“푼돈에 창작력과 주체성을 파는 작업. 그래서 무명도 아니고 유령인 것이다.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강물을 부유하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그렇게 어디 하나 자리하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 그들에겐 뿌리가 없으므로 작품이란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지금 나는 고스트라이터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스트라이터다. 4년 전 등단하며 첫 장편소설을 출간한 후, 두 번째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유명 웹소설 작가의 사무실에서 그가 잡아놓은 초안을 바탕으로 대신 작품을 써주며 창작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푼돈을 받으며 연명하고 있는 중이다. 유령작가 일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작력을 저당 잡힌 채 악순환의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온다. 자신의 미래를 화려하게 설계해주면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여배우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주인공이 설계한 대로 여배우의 운명이 변화하는 믿기 어려운 기적이 일어난다. 대체 그의 글에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쓰면 이루어진다’는 판타지 같은 가설을 전제로 펼쳐지는 이 소설엔 또 다른 유령작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웹소설, 드라마, 영화, 만화……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업계의 배후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 역시 주인공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내 이름을 건 작품으로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조금씩 스러져가고, 남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겐 천국도 지옥도 없다. 척박한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가의 삶을 조명했지만, 유령작가들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버스 안은 피곤에 절은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옆에 선 채 자꾸 고개를 까딱이며 조는, 대리점 판매 사원처럼 보이는 이 여자도 마찬가지겠지? 그녀도 결국 남의 일을 해주며 먹고사는 대리인생이고, 나 역시 대필을 해먹고 사는 유령작가다. 밤이 되면 이 도시의 취한 사람들마다 대리기사를 부를 거고, 지금 이 차를 모는 버스 아저씨도 자기 버스가 아니니 결국 대리운전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남의 걸 대신 해주고 사는 대리인간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자포자기와 냉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기적은 터무니없는 환상이 아니고, 작가는 그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내 글과 내 삶의 주인공으로 일어서기 위한 에너지는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발화하는 것임을 깨달아가는 것. 그리고 절망도 희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써나가는 것. 일상성의 획득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선사한 기적임을 김호연 작가는 유령작가들의 한바탕 소동극을 통해 이야기한다.

지난 몇 달 간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거대한 파도는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앗아갔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자본과 권력에 놀아난 것만 같은 비참함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노력이 아닐까? 개인에 대한 믿음과 응원.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다.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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