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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울한 옥살이] “가난하면 범죄자입니까?”…40대 가장의 절규
-“가난 탓 누명 쓰고 7개월 옥살이”
-“아내 공장 나갔지만 빚만 더 늘어”
-무죄선고…검찰 항소이유서 제출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무죄 선고를 받고 7개월 만에 풀려난 이모(47) 씨는 최근 다시 퀵서비스 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는 7개월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가장이 사라지자 아내는 공장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쌓여 있던 빚은 이자만 더 불어났다.

운수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년시절을 유복하게 살던 이 씨는 가세가 기울며 전과까지 얻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사기 혐의로 두 차례나 처벌을 받았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약식명령도 한 차례 받았다. 그마저도 10년 전 일이다. 게다가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도 등 강력범죄 전과는 하나도 없었다. 이 씨는 사건 당일도 빌려줬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지인의 집이 있던 인근 상가에 찾아갔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전날과 그 전날에도 상가 인근을 배회하며 지인을 기다렸다. 경찰은 이를 두고 ‘범행 장소 사전답사’라고 발표했다.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무죄 선고를 받고 7개월 만에 풀려난 이모(47) 씨는 최근 다시 퀵서비스 배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는 7개월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가장이 사라지자 아내는 공장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쌓여 있던 빚은 이자만 더 불어났다.[사진=헤럴드경제DB]

재판에서 강도상해라는 혐의가 문제가 된 것도 결국 ‘가난’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돈을 내놔라”라는 등의 요구를 받은 적이 없었다. 피해자가 범인에게서 들은 말은 “조용히 해”라는 말 뿐이었다. 범인은 금품을 요구하는 몸짓을 취할 새도 없이 도주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생계가 어려운 이 씨가 당연히 강도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 단정해 강도상해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변호인 측에서 ‘사람이 붐비는 출근시간에 왜 다른 범죄도 아닌 강도를 특정했느냐’고 지적하자 “평소 생계가 어려웠던 이 씨가 금품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막연한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경찰도 범행 동기가 없다는 지적에 “이 씨가 사업자금을 탕진한 후 아내와 금전문제로 다툰 카카오톡 채팅 내용을 확보했다”며 “사건이 발생했던 날에도 아내와 ‘일이 잘못됐다.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말하는 등 범행 동기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가난 자체가 범죄의 동기가 되는 셈이다.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도 대부분 문제가 됐다. 사건현장 인근 CCTV 영상과 이 씨의 행적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자 검찰은 해당 영상에 ‘정확한 시간 확인 불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씨의 행정과 일치하는 영상에는 없던 단서였다. 영상 자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흐릿하고 너무 멀리 찍혀 있어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은 상태였다.

경찰은 피해자의 옷에서 발견된 남성의 DNA와 당시 수사관들의 DNA를 대조하겠다고 25일 밝혔다. 당시 증거로 제출됐던 피해자의 블라우스에서 발견된 DNA 흔적은 총 17개. 이 중 16개는 여성의 DNA로 드러났고, 나머지 하나에서 남성의 유전자가 발견됐다. 경찰은 법정에서 “수사관의 땀이 묻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었다. 이 씨의 변호를 맡은 김준 변호사는 “증거물을 수집하는 수사관의 땀까지 묻을 정도로 더웠던 8월에 범행이 이뤄졌다”며 “이 씨가 정말 범인이라면 왜 이 씨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CCTV 영상과 피해자 진술, DNA 모두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자 수사기관은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했다. 직접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수사기관은 35번의 질문 중 두 차례 유의미한 반응이 나왔다며 이를 증거로 제출했다. 당연하게도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허점투성이 수사라는 의혹까지 샀지만, 수사기관의 입장은 단호했다. 검찰은 무죄 선고 6일 만에 항소이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CCTV 영상을 보면 이 씨 외의 다른 범인은 있을 수 없다”며 “경찰이 보름이 지나서야 법인을 체포해 주요 증거 확보가 어려웠고, CCTV 영상이 흐릿해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범인이 이 씨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수사기관의 확신에도 법원은 제출된 증거들에 대해 8가지 이유를 들며 무죄를 선고했다. 변호인의 주장 대부분을 그대로 인용했다. 김 변호사는 “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억울하게 강도로 의심받아서는 안되지 않겠느냐”며 “진실을 하늘과 본인만 아는 것이겠지만, 정말 아닐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억울하게 징역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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