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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청년백수·50대 은퇴가장·70대 빈손할매…비현실? 이게 현실!
연극 ‘광주리를 이고 가시네요, 또’
윤미현 작가 ‘노년 시리즈’ 중 한편
‘작가의 방’서 태어나 정식 무대로


“이게 10년 만에 처음 버는 돈이야?” “그런 셈이지.”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한 후 취업도 못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에만 틀어박혀 사는 내일모레 마흔 ‘미미’는 10년 만에 돈 500원을 번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며 외국어에도 능통한 ‘최고 스펙’을 보유했지만, 최악의 경제위기에 허덕이며 결국 취업을 포기해버린 미미. 그가 돈을 번 방법은 다름 아닌 노인 분장을 하고 긴 줄을 기다려 교회에서 나눠주는 동전을 받는 것이었다.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사진>는 미미네 가족에게 생기는 다양한 사건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다양한 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집중한다. 

30대 청년 백수 미미는 돈 벌기를 포기해버렸고, 50대 미미 아빠는 퇴직 후 막장 드라마에 빠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70대 미미 할머니는 수명이 늘어난 100세 시대를 맞이해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산 집을 아들 부부에게 준 것을 후회하며 산다.


작품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젊은 극작가전’의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해 시작된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 ‘작가의 방’을 통해 탄생했다.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이 지난해 5월부터 신작 창작에 몰두해 작품을 내놓았으며, 그해 11월 낭독 발표회를 통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아 정식 무대를 선보이게 됐다.

이번 윤미현 작가의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내가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그가 오랫동안 노인들을 관찰하며 기획한 ‘노년 시리즈’ 3부작 중 하나다. 시를 전공하고 소설로 등단해 현재는 희곡을 발표하고 있는 윤 작가는 시의성 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사실적이면서 문학성 짙은 문체로 공연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극은 평생 광주리에 온갖 물건을 담아 팔고 살던 ‘광주리 할머니’가 다시 광주리를 꺼내 들고 집에 있는 온갖 식료품을 빼돌려 팔고 다니는 이유를 추적한다. 할머니는 평생 행상을 해 어렵게 자식들을 키워내고 전 재산을 물려주지만, 그의 생일 잔칫날 자식들 사이의 난투극을 보게 된다. 자식들이 너도나도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는 이유로 싸움을 벌인 것. 아들, 며느리에게 받은 설움을 복수할 방법과 앞으로 살길을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믿은 할머니는 집안의 살림살이를 하나씩 팔아 돈을 챙긴다.

물론 아들 부부가 기꺼이 광주리 할머니를 모실 수 없는 사정도 있다. 할머니가 물려준 아파트는 대출로 자식들 교육비를 대느라 이미 ‘깡통’이 돼버렸고, 미미 아빠는 50대의 아직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퇴직해 더 이상 정기적 수입을 보장받지 못한다. 퇴직한 남편과 백수 딸을 둔 미미 엄마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값싼 식료품이 나올 때마다 노후 대비용으로 사재기를 해댄다.

청년 백수 미미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출받아 어렵게 간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들은 오히려 미미를 내쫓는다. 이후 미미는 이불 속으로 자기 자신을 숨겨 버렸고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면 10년이나 취업이 되지 않을 리가 없어”라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30대 젊은이부터 50대 중년, 7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가 처한 현실을 날카로운 풍자와 통렬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공연을 다 보고 나면, 작가가 처음 품었던 질문처럼 ‘내가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7년 현재 한국 땅에 사는 국민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표현 방법은 연극적 요소로 가득해 리얼리즘과 부조리극을 오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최용훈 연출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광주리 할머니 역에 홍윤희, 미미 역에 이지혜를 비롯해 박혜진, 이영석, 조영은, 오영수, 신안진, 박지아 등 실력 있는 국립극단 배우들이 무대를 채운다. 오는 23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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