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런 ‘흥보씨’라면…세계와 통하겠구려
고선웅 연출·이자람 음악 객석감동 이끌어…석가·예수·외계인 떠올리는 독특한 설정에 전통·현대 아우르는 음악 ‘눈·귀를 사로잡다’

‘술 안 먹고 욕 안하고 쌈 안하고 쌈 말리고 초상나면 곡해주고 불난 데는 물 뿌리는’ 흥보와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쌈박질은 죽 먹듯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난 데는 부채질’하는 놀보를 빼면 다 바뀌었다.

둘은 한 배에서 태어나 성격이 다른 형제가 아니다. 흥보는 아이가 없던 연씨 부부가 주워온 자식이고 놀보는 건달과 정을 통해 낳은 아이다. 박씨를 물어다 주는 ‘강남 제비’는 한양에서 이름 꽤나 알리던 춤꾼이고, 원작에는 없던 다른 별에서 온 스님과 “흥행행 흥행행”이라고 우는 ‘말하는 호랑이’도 극의 재미를 더했다. 올 상반기 최고 공연으로 꼽히는 이른바 ‘반전 창극’이라는 ‘흥보씨(Mr. Heungbo)’이야기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은 신작 ‘흥보씨’(Mr. Heungbo)를 4월 6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흥보씨는 뚜껑을 열기 전부터 끓어 넘치고 있었다. ‘연출 고선웅ㆍ음악 이자람’ 콤비가 나섰다는 소식에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던 것. 비틀기의 귀재, 시대의 이야기꾼이 새로 쓴 고전에 대한 궁금증과, 천재적 감각으로 ‘이자람’이라는 장르를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는 이 시대 소리꾼의 실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물론 ‘기대 이상’이다. 


극과 소리 모두 고전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풀어냈다. 고선웅 연출의 기발한 연출력과 필력은 공연 내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핵심은 흥보다. ‘선한’사람이라는 평면적 캐릭터는 현대적 설정 속에서 개연성과 핍진성을 확보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맞은 여인을 아내로 들이고, 길거리에 떠도는 거지들을 자식으로 거두며 이른바 ‘대안가족’을 이끄는 등 현대사회에서 착하다 평가되는 가치를 입었다.

물론 극의 재미를 위한 황당한 설정도 있다. 화성과 금성을 왕래중이던 걸승인 외계인은 흥보에게 보리수를 선물한다. 보리수 나무 아래 ‘텅텅텅’비우면 다시 채워진다는 무소유의 깨우침을 얻은 흥보는 눈먼이를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서게하는 기적도 행한다. 석가와 예수가 동시에 떠오른다. ‘선함’의 대명사 종교도 슬쩍 끼워넣은 것이다.

소리도 못지 않다. ‘흥보가’의 눈대목 ‘가난타령’, ‘제비노정기’, ‘화초장타령’, ‘박타령’은 전통 소리를 그대로 살렸다. 바뀐 이야기의 상황에 맞게 재배치되긴 했으나, 원곡 그대로 만날 수 있다. 또한 합창과 방창(傍唱ㆍ주인공의 내면세계나 극적 정황 등을 무대 밖에서 설명하고 보충하는 노래)에선 판소리와 한국 전통음악 모티브를 가져와 이를 발전시키는 한편, 외계인인 스님의 출현에는 현대음악과 사운드를 입혀 대비와 긴장을 고조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이같은 비틀기와 변화가 ‘재미’를 입었다는 점이다. 관객석에서 ‘얼쑤’ ‘잘한다’와 더불어 웃음도 간간히 터져나온다.

특히 강남의 외로운 사모님을 위로하는 제비가 부르는 ‘제비노정기’는 재미의 하이라이트다. 강남제비(유태평양)가 흡사 랩처럼 뱉어내는 창은 이것이 전통소리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흥이 넘친다. 더불어 보리수 나무 아래 깨달음을 얻은 흥보와 흥보식솔들이 부르는 “내게 강 같은 태평”은 한국 기독교를 순식간에 극장으로 소환하기도 했다.

공연 전 헤럴드경제는 음악감독인 이자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지 3월 31일 27면 참조

공연을 2주 남짓 앞두고 예매율이 60%를 넘어서는 등 분위기가 좋다는 말에 이 감독은 “우리에게 대박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실제 공연으로 만난 ‘흥보씨’는 제작진들의 눈높이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사회’에 대한 전 세계적 욕구가 있음을 꿰뚫고 석가, 예수, ET 등 보편적 아이콘을 끌어들였다. 지금 객석에 앉은 한국인보다 미래에 그 자리에 앉을 외국인에 대한 호소력이 더 짙을 수 있을것이라 판단되는 지점이다. 해외공연과 현지 언론들의 찬사가 머지 않아 보인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