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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이 책!] 사이다 같았다가, 안타까웠다가… 16년차 부장검사의 기록 너머 사람들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큰 인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조인성, 정우성. 영화 ‘더 킹’의 포스터였다.

당시 개봉 전이라 구체적인 카피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카탈로그 설명 등을 미루어보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내는 검사들 이야기인 것 같았다.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검사’하면 권력, 부패, 위압감 등의 이미지만 떠올랐다. 그 포스터의 느낌 그대로.


회사로 돌아왔고, 한 달이 흘렀다. 어느 월요일 아침, 팀장으로부터 ‘급’ 메일이 왔다. 파일도 첨부되어 있었다. 투고원고인데 얼른 읽어보라는 거다. 저자가 검사다. 무려 16년 경력의 부장검사.

내가 가장 가까이 접한 검사는 ‘더 킹’ 포스터 속 조인성이 전부였다. 그 다음은 법정 드라마에서 봤다. 검사복 입고 ‘이의 있습니다!’ 하고 외치거나 변호사를 깔아뭉개거나, 아니면 소위 ‘잘 나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모습들이었다.

16년 차든, 부장이든 뭐가 다르랴. 그래봤자 검사인데. 전혀 기대 없이 원고를 읽었다. 이런 하나마나한 문장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첫 페이지부터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마음이 따뜻했다. 안심이 됐다.

원고를 읽자마자 저자를 만나기 위해 파주에서 용인까지 달려갔다. 출발 전, 전화로 ‘여러 곳에 투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받은 출판사 대부분이 피드백을 주었고, 심지어 계약서를 먼저 보낸 곳도 있었다. 팀장과 담당하게 될 편집자가 팀을 이루어 갔더니 저자도 ‘움찔’했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원고 집필 당시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검사들을 가르치던 안종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된 에세이에 인생 전체를 담았다. 법과 정의에 대해 논하자는 것도 아니고, 격무에 시달리는 검사 생활을 하소연하자는 것도 아니다. 16년 동안 만난 사건들과 그 사건들마다 걸려 있는 인생들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내는데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가, 사이다를 외쳤다가, 명치가 아플 정도로 울컥하기도 했다. 감동과 위로를 넘어 안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글이었다.

방황하는 청소년을 보며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검사.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의심받는 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검사. 피해자와 피의자 그 경계에서 최선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검사. 이런 검사가 신임 검사들에게 ‘검사의 자세’에 대해 가르쳤다니, 참 다행이다 싶다.

사건 기록에 파묻혀 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사람과 인생을 보는 검사. 모든 사건을 법이라는 잣대로 재단하기보단 ‘사람의 일’로 풀어나가는 검사. 우리 모두가 원하는 모습, 판타지이다. 마흔넷의 부장검사 안종오의 인생 조각들은 단편소설 이상의 재미를 담고 있다.

다산북스 편집자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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