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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기 딜레마①] “탄핵반대로 보일라”…휘날리지 못한 ‘3ㆍ1절 태극기’
-“탄핵반대 연상될라” 부담
-게양률 90% 강남구도 저조
-일부 “집회와 상관없이 게양”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딸이 요즘에 태극기 잘못 달면 괜히 오해받는다며 올해는 건너뛰자고 하더라고요. 태극기를 안 달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요즘에는 조심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서 안 달았습니다.”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주부 황모(50ㆍ여) 씨는 올해 처음으로 3ㆍ1절에 태극기를 달지 않았다. 최근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다녀온 주민이 태극기를 흔들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 씨는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단지 내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를 질러 주민들이 놀란 적이 있었다”며 “괜히 오해를 사는 건 아닌가 싶어 태극기 게양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설명=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해 광복절 90%에 달했던 태극기 게양률은 삼일절이었던 지난 1일 40% 수준에 그쳤다. 태극기 게양률이 떨어지자 구청은 직접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를 달기도 했다.]

지난 1일, 98주년째를 맞는 3ㆍ1절에도 집에 태극기를 걸어놓은 집은 많지 않았다.

최근 태극기가 박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우익단체들의 상징처럼 쓰이면서 태극기에 거부감까지 느끼는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날 대단지가 들어선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 태극기를 단 집은 25% 정도에 그쳤다. 태극기를 달지 않은 가정 중 상당수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집회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올해는 태극기를 달지 못했다는 대학생 김준범(21)씨는 “3ㆍ1절인데 태극기를 달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러나 “태극기를 달지 못한 나도 부끄럽지만, 보수단체 집회에 억지스럽게 사용되는 태극기도 부끄럽다”고 말하며 탄핵 반대 집회 때문에 태극기를 달지 않았다고 했다.

900가구가 늘어선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에도 태극기를 단 집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광복절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강남구의 태극기 게양률은 90%에 달했지만, 이날 단지 내 게양률은 40%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구청과 통ㆍ반장들이 직접 게양에 나섰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보이지않는 단지 한가운데는 게양률이 훨씬 적었다.

주민 원모(69) 씨는 “강남구에서 태극기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구청에서 나와 층마다 태극기를 달았지만, 각 가구의 베란다에는 달지 않았다며 관리사무소에서 방송하고 있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다른 아파트 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50) 씨도 “매번 달았던 태극기지만, 올해는 안 달고 있다”며 “바로 아랫집은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같이 달았더라.. 함께 묶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아파트도 태극기 게양률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반면, 태극기 집회를 의식하지 않고 게양했다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김모(38) 씨는 “애국심 강요나 태극기 집회와 상관없이 우리 집은 매년 태극기를 달고 있다”며 “우리 집 태극기와 광화문의 태극기는 같지 않다”고 전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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