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월계수’를 돋보이게 만든 비결들
아츄커플의 가벼움과
이만술 장인의 무거움 조화
고은숙·복선녀 등 코믹 캐릭터도 한몫
“신사란 옷과 삶을 일치시키는 사람”


26일 종영한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한마디로 촌스런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도, ‘복수 코드’도 없는 드라마이긴 했지만, 권선징악과 모든 사람들의 해피엔딩은 마치 9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데는 편했고 분위기는 따뜻했다.

이렇게 복고적이고 심심한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갈 수 있게 있게 한 요인들이 있다. 가벼운 요인과 무거운 요인 두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겠다.

주인공 커플, 이동진(이동건)과 나연실(조윤희)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고구마 멜로였다. 종영 직전까지 이들 사랑의 최대 장애요인이었던 조폭 출신 홍기표(지승현)의 존재는 촌스러운 갈등을 유발시키며 신파성을 강화했다.

그러니 나연실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동건과 조윤희의 멜로가 조금 더 진행될라치면 기표와 그의 부하들, 또는 그의 엄마(정경순)가 어김 없이 나타나 이들의 사랑을 원점으로 되돌려놨다. 이들의 도돌이표 멜로는 한동안 시청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리고 착한 나연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별로 없어 보였다. 나연실이 연애에는 쑥맥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시대 이 정도의 쑥맥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촉촉이’ 동진이가 ‘반짝이’ 나연실만큼 답답한 캐릭터는 아니어서 그나마 볼만했다. 동진은 기표가 연실 아버지에게 신장이식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가장 먼저 알고도, 이 사실을 연실에게 알리지 않은 심지 깊은 남자였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아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그의 방식은 옳았다.

하지만 이들 커플의 답답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커플의 관심은 자연스레 ‘아츄커플’에게 넘어갔다. 민효원(이세영)과 강태양(현우)은 처음에는 분량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갈수록 분량을 키워갔다.

좋아서 사랑을 나누는 효원의 구애과정부터 재미있었다. 효원의 관점에서 볼 때 러블리즈의 “너는 내 맘 모르지 아츄”, 이 가사가 한동안 이 커플에게 적용되는 문장이었다.

애들 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그래서 더욱 순수하게 보이는 아츄커플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뽀뽀를 어디에 해주느냐에 따라 ‘충전 %’가 달라지는 이들은 시청자를 흐뭇하게 했다.

게다가 가난하지만 올바른 정신 상태를 지녔던 태양은 신세대지만 장모(박준금) 등 어른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중년 시청자들도 감동시켰을 정도였다. 효원은 철부지 같은 천방지축이 최대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집안이 망하자 가장 어른 같은 모습을 보이는 초성장 캐릭터였다.

최고의 코믹 커플은 배삼도(차인표)-복선녀(라미란) 부부였다. 특히 라미란은 시장이나 집에서 원맨쇼에 가까울 정도로 코믹 연기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들 중년부부는 ‘숙제’도 하고 ‘극복’도 했지만 인생의 한고비를 함께 견뎌내며 등 긁어 주는 게 더 편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도와 선녀 부부 커플이 열심히 연기했지만 이들의 코믹케미의 시너지는 예상외로 강하지 않았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캐릭터가 고은숙(박준금)이다. 사망한 미사 어패럴 민 회장의 후처인 그는 동진 대신 자신의 아들 효상(박은석)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키는 계략을 세운 ‘악녀’였다. 하지만 우아하게 보이려고 하는데 속이 따라주지 않아 생기는 속물성과 특유의 막무가내 푼수끼로 인해 오히려 미워하기 힘든 코믹 캐릭터가 됐다. 사랑받기는 힘들어도 결코 밉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낸 박준금은 악녀 역할을 해도 부담없이 볼 수 있었다. 전처 딸이나 며느리, 사위 등 누구를 구박해도 악녀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박준금은 자신의 적은 분량을 최대치로 늘려나갔다.

태평(최원영)-동숙(오현경) 커플은 딱 자신의 지분만큼 챙겼다. 외로운 로커였던 태평이 동숙과 함께하며 트로트계의 신사로 거듭나는 모습이나, 아내이자 매니저인 동숙이 태평의 인기유지를 위해 태평을 ‘미혼’이라고 속여 남편의 성공을 지원한것도 재미의 포인트였다.

주말 가족드라마가 귀여운 아츄커플과 ‘푼수’ 고은숙, ‘코믹’ 복선녀 캐릭터만으로 끌고가기는 힘들다. 뭔가 묵직한 캐릭터와 서사가 필요하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평생 양복을 만들어온 이만술(신구)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이 드라마는 이야기 전개와 코믹 스토리 등은 진부한 감이 있고 현실성도 떨어지지만 신구의 대사만큼은 연륜과 수준이 느껴졌다. 신구가 시력이 상실돼어 가는 질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와, 인생을 정리하는 관조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

“평생 멋지고 좋은 수트를 원 없이 보면서 눈 호강하며 산 인생이었다. 아직은 볼 수 있다. 어차피 늙으면 눈도 귀도 어두워지는 거다. 나는 시력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정신력은 건강하다.”

49회에 진행된 이만술 테일러 퇴임식에서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신의 표현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살겠다는 다짐이자 앞으로 이렇게 되겠다는 소망이다”라고 한 말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야 했다. 이후 보여준 5회는 별 것 없는 이야기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마지막회 완전히 시력을 잃은 이만술의 대사, “신사란 비싸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옷과 삶을 일치시키는 사람이다. 그것이 진정한 신사다” 한 문장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가치를 입증했다.

이만술이 “앞이 안 보이면 새로운 게 보인다. 지난 세월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니 답답할 새가 없다”고 말하고, 지난 삶에 대해서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과분하게 호사스러웠다”고 말할 때는 경외감이 느껴졌다.

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