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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러운 빠른 년생①] “빨리 입학한게 죄?”…애매한 1ㆍ2월생은 웁니다
-고등학교 졸업해도 ‘만 18세’…술ㆍ담배 등 이용 못해
-한국사회 나이 서열 중시…‘족보브레이커’ 취급 일쑤
-2009년부터 조기입학제 폐지…빠른 02년생까지 설움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ㆍ유오상 기자]#. 서울의 유명 사립대 2학년 박모 씨는 최근까지 친구들과 술집에 함께 가지 못했다. 빠른 98년생인 나이 탓에 지난해까지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청소년 신분이어서 학과ㆍ동아리 뒤풀이나 친구들과 친목모임이 필수인 대학생활에서 소외받았다. 박 씨는 “친구들과 같은 대학생이지만 신분증을 확인하는 곳에 가면 어김없이 쫓겨났다”며 “동기와 선배들에게 술 마실 수 없는 ‘어린 아이’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되서야 마음 편히 술집을 드나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 씨의 또 다른 고민은 군대다. 올해 만 20세가 된 대학 친구과 동네 친구들이 모두 군입대를 계획하고 있지만 박 씨는 아직 징병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만 20세가 되지 않으면 해군, 해병대, 공군 등 모집병에 합격해야만 군대에 갈 수 있다. 하지만 경쟁률이 높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박 씨는 “중ㆍ고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1년 벌었다고 좋게 생각했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빠른 년생이라는 이유로 불편한 일이 많다”고 말했다. 


입학월(3월)을 기준으로 한 조기입학제도가 2009년 폐지되고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빠른 년생들의 불편은 여전하다. 올해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63만명 중 10만명 가량의 빠른 99년생을 포함해 앞으로도 빠른 2002년생까지 같은 문제를 겪게 된다.

수십년 간 한해 출생자의 1/6이나 되는 1ㆍ2월생 들의 고충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커진다. 초등학교 입학년도에 따른 ‘학년 나이’와 ‘주민등록 나이’ 차로 인한 혼란 때문이다. 이들이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입학월이라는 기준은 사라지고 나이만 존재하게 된다. 각종 법률에서 ‘법적 나이’를 적용받다보니 동급생과는 차별 아닌 차별을 받은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인 사람을 말하는데, 태어난 날짜가 아닌 연도를 기준으로 청소년 여부를 구분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빠른 년생들은 만 18세인 청소년으로 분류되어 동기들과 달리 술이나 담배 등을 이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병역법의 경우도 병역 자원의 통일적 관리를 위해 생일이 아닌 연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한다.

유독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빠른 년생’을 괴롭히는 건 ‘법적 기준’만이 아니다. 빠른 년생 탓에 족보가 꼬이는 경우도 많다. 빠른 년생들이 대학이나 직장 등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실제 나이’와 ‘학년 나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82년 2월생 백모 씨는 사람들이 나이를 물으면 대답을 얼버무리기 일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백 씨는 81년생 00학번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친구로 지냈다. 82년생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백 씨는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고 “81년생”이라고 했지만 어느 날 빠른 년생이라는 사실이 들통났다. 할 수 없이 몇몇 82년생 후배들과도 친구가 됐다. 하지만 81년생과 82년생 친구들이 함께 있으면 ‘족보브레이커’ 취급을 받게 된다. 백 씨는 “81년생들이 ‘너 그럼 나한테 언니라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며 “빠른 년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불편하다”고 말했다.

국민신문고에도 빠른 년생들의 고충 민원이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는 연초에 집중적으로 몰린다. A 씨는 “빠른 년생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빠른 년생과 관련하여 시정해달라”고 국민신문고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사회생활 불편, 군대문제 등을 토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빠른 년생의 불편은 이해한다”면서도 “현행 법적 취지 및 형평성 등을 고려할때 대학교를 입학하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빠른 년생 대한 청소년보호법에 예외를 둘 수 없다”고 말했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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