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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어도, 설입니다①]장기기증 母子ㆍ파산구제 전도사… ‘사람이 희망입니다’
-엄해숙 씨 母子, 신장기증으로 환우 2명에 새생명 선사
-신장 수여자 가족과 끈끈한 유대…“새 가족 얻어 행복”
-파산 후 재기 경험한 서경준…직장 관두고 상담 시작
-신불자 800만명시대…“더 많은 파산자 수렁서 구할 것”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병신(丙申)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유(丁酉)년 목전에 닥쳐온 한파는 더 시리고 아프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작은 촛불처럼 세상을 비추고, 따듯한 온기를 전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작은 것도 묵묵히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이런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가 우리 삶에 온기를 채워준다.

국내 최초로 모자(母子)가 생존 시 신장을 타인에게 기증한 엄해숙ㆍ윤현중 씨 모자가 나눔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새 가족까지 얻은 것에 감사”…국내 최초 모자(母子) 신장기증자=“제가 준 것은 신장 하나 뿐이에요. 하지만 이로 인해 저는 저혈압이란 지병이 나았고, 한 사람 뿐 아니라 한 가족의 미래를 되찾아줬다는 행복감까지 생각하면 받은게 더 많습니다.”

최근 기자를 만난 엄해숙(64ㆍ여) 씨가 인터뷰에 들어가기 무섭게 한 말이다. 이를 바라보던 아들 윤현중(47) 씨도 곧장 “제 신장 하나로 동생 부부란 새 가족을 얻었다. 준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아 정말 행복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국내 최초 모자 신증 기증인이다. 지난 27년간 사랑의장기운동본부(이하 ‘장기본부’)를 통해 진행된 959건의 신장 기증 사례 가운데 모자가 나란히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한 것은 이들이 유일하다.

먼저 실천에 나선 것은 어머니 엄 씨였다. 지난 2003년 신장 하나를 만성신부전 환우에게 선물했다. 엄 씨는 “생계를 위해 지난 1976년 1월부터 시작한 보험설계사 생활이 30년쯤 됐을 때부터 타인을 돕는 삶에 전념하자는 다짐을 했다”며 “신장 기증은 이 약속을 실천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모자(母子)가 생존 시 신장을 타인에게 기증한 엄해숙ㆍ윤현중 씨 모자가 나눔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지난 1983년부터 헌혈을 시작해 금장훈장을 받았던 아들 윤 씨가 신장 기증을 결심하게 된 것도 어쩌면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연스레 닮아갔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머니의 수술을 반대했던 윤 씨는 7년 뒤 스스로 수술대 위에 올랐고, 만성신부전으로 생명이 꺼져가던 36세의 새 신랑에게 신장을 이식했다. 윤 씨는 “아내와 딸도 적극 지지해줘서 더 큰 보람을 느꼈다”며 “아내도 생존시 신장 기증을 고민하고 있고, 대학생인 딸도 3년째 장기기증 홍보대사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다”고 했다.

엄 씨 모자가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신장 기증을 통해 새 가족을 얻었다는 것이다. 윤 씨의 신장을 기증받은 대전의 강모(42) 씨는 요즘도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하고 명절이면 꼭 찾아오곤 한다.

엄 씨 모자의 선행은 현재진행형이다. 모자 모두 가방에 항상 장기부전 환우들을 위한 후원신청서를 가지고 다니며 주변에 기증을 권유하고 있다. 게다가 엄 씨는 신장을 이식받거나 기증한 사람들의 모임인 ‘새생명나눔회’ 전국회장으로 지난 2012~2015년 활동하기도 했다. 엄 씨는 “신장이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것과 같다면 매년 신장 기증에 나서고 싶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나눔으로 수십배의 행복이 찾아오는 이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파산자들의 구제를 위해 설립된 사회공헌기업 ‘희망 만드는 사람들’의 서경준 부장이 자신이 겪었던 파산ㆍ재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채무불이행으로 고통받는 타인을 어떻게 구제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파산해 본 ‘파산구조대’가 전한 진심…생명까지 구해=헤어나올 수 없는 빚의 수렁에 빠져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는 ‘파산 구조대’ 역할을 하는 서경준(45) ‘희망 만드는 사람들’ 부장. 그도 13년전까지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빚에 고통받던 파산자였다.

생활비는 물론 병치레가 잦았던 어머니의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막다보니 서 부장의 빚은 2억원까지 불어났고, 결국 5~6개의 카드로 일명 ‘돌려막기’로 버텨야했다. 새 직장을 얻었지만 줄지 않는 카드빚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서 부장은 “목숨을 끊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1주일 넘게 한 적도 있었다”고 당시의 절망을 털어놓았다.

서 부장은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1997년부터 쌓였던 빚에서 2004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 서 부장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내 인생을 이렇게 엉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며 “희망이 생기니 단순히 돈이 부족해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고, 차근차근 노력하다보니 빚이 줄기 시작했다”고 했다.

빚을 해결하고 나니 사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는 것이 서 부장의 설명이다. 이 때 시작한 보험설계사 생활도 정말 행복했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파산자들의 구제를 위해 설립된 사회공헌기업 ‘희망 만드는 사람들’의 서경준 부장이 자신이 겪었던 파산ㆍ재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채무불이행으로 고통받는 타인을 어떻게 구제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평범한 직장인의 삶 속에서도 서 부장의 마음 한 켠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파산이란 구렁텅이에서 재기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인생 하반기에 파산자들의 구제를 위해 강의ㆍ상담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아내를 설득했고, 이를 이해해줘 고마웠다”는 서 부장은 2009년부터 지금의 일을 하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 사회공헌기업인 ‘희망 만드는 사람들’에 합류했다.

서 부장은 현재 한 달에 약 20가정씩 파산 구제 상담을 하고 있다. 하루에 한 가정 꼴로 상담을 하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서 부장은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가 2500만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소위 ‘신용불량자’로 분류되는 개인신용등급 7등급 이하 인구가 무려 700만~800만명에 이르며, 영향을 받는 가족까지 생각한다면 1000만~1500만명이 파산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이런 분들에게 빚이 생기는 원인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재무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더 나은 상담을 위해 금융학은 물론 상담, 심리, 코칭 등을 공부하고 있다는 서 부장에게도 작은 바람이 있다. 그는 “생활고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송파 세모녀 사건’이나 ‘인천 일가족 동반자살’ 사건등은 나 같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뛰며 해법을 알려 줄 수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죄책감이 든다”며 “정유년 새해엔 좀 더 많은 파산자들을 구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다닐 것”이라고 다짐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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