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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만신창이됐지만 책무는 여전히 막중한 문체부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22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공허해 보인다.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체부 장관 직무대행인 송수근 제1차관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이날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부당한 외부 개입을 방지하는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문체부는 예술인의 창작 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정책으로 도와주고 지켜줘야 할 ‘정부 당국’이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된 대목이며 문체부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지원은 커녕 되레 이들을 차별하고 속박하는 데 앞장을 섰다는 걸 고백한 것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수십년 뒤로 되돌리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거듭 확인한 국민들 심경은 더 참담하고 부끄럽다.

그런데 정작 문체부의 사과문에는 문제의 리스트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사과를 하기는 했는데 손에 잡히는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셈이다. 정말 잘못을 뉘우친다면 최소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자체 조사를 철저히 하고 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공무원을 찾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마땅하다. “특검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뒤로 한 걸음 발을 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비난을 피하려는 물타기용 사과로 비난받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문체부가 사과문을 발표한 날 유진룡 전 장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주도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이 구속된 배경에는 문체부 자료가 많았다는 말도 했다. 결국 ‘윗선’이 기획하고 문체부가 그 수족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물론 권력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공무원 조직의 특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과의 주체는 문체부가 아니라 청와대여야 한다는 여론도 수긍이 간다. 그렇더라도 문체부가 달랑 사과문 한장 남기고 피해자를 자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사건으로 문체부는 현직 장관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전직 김종덕 장관과 차관 2명도 영어의 몸이 됐다. 무엇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부처 전체가 풍비박산이 났다.

만신창이 상태지만 문체부의 책무는 여전히 막중하다. 당장 내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하는 국과적 과제가 있다. 마구 뒤틀린 문화예술계를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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