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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는 언제?…연봉은 얼마나 받니?…‘귀향포기’ 만드는 어르신 명절 훈시
#1. 결혼 4년차 직장인 이모(34ㆍ여) 씨는 올 설 명절을 앞두고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댁에 “명절 당일에 회사에 출근하는 바람에 가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난 설과 추석 명절에 시댁 어르신들로부터 “결혼한 지가 언제인제 아직 좋은 소식 없냐. 노력을 안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 세례를 받고 돌아와 위염에 걸려 병원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남편도 이런 안 씨의 마음을 잘 알고는 본인만 차례를 지내러 다녀오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안 씨는 “어른들은 걱정이라고 하는 말이 남편과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며 “거짓말을 한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만 시댁에 가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이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2. 벤처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안모(31) 씨는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 친척들에게 할 거짓말을 미리 생각 중이다. 모두 재직중인 회사와 규모, 연봉 수준에 대한 것이다. 업계에 대한 신념으로 벤처기업에 취업한 뒤 맞은 첫 명절에서 자신의 꿈과 현실에 대해 친지들에게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예상과 다른 잔소리 뿐이었기 때문이다. 안 씨는 “입사 초반 꿈에 대한 자신감에 1년에 1~2회 볼까 말까한 친척 어른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자 날아온 대답들은 ‘그렇게 공부하고도 대기업도 못갔냐’, ‘그 연봉으로 결혼이나 하겠냐’, ‘부모님이 실망하셨겠다’ 등의 말 뿐이었다”며 “이해하려 노력조차 않는 어른들에겐 거짓말을 하고 하루 이틀을 넘기는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을 맞아 또 한 번의 ‘거짓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사이에서 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기혼자 그룹’ 가운데선 일명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말을 택하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다.

결혼 6년차 최모(40) 씨는 “고향에 가는데만 족히 5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가봤자 월급, 직장, 신체상태, 출산 등 듣기 싫은 잔소리만 잔뜩 듣는 경우가 많아 명절이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직장일을 핑계로 일년에 가끔 만나는 친인척들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비단 기혼자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일반 직장인들 역시 명절날 친인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연봉이나 본인의 능력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3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2.9%가 친인척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내용으로는 ‘연봉’이 43.7%로 가장 많았고, ‘본인의 능력(29.4%)’, ‘재직 중인 회사 규모(21.8%)’, ‘인맥(4.2%)’이 뒤를 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애인 유무’, ‘이직계획 등이 있었다.

거짓말하는 이유는 70.6%가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를 꼽았다. ‘어차피 다들 거짓말 하는 것 같아서’는 15.1%, ‘부모님 등 요청 때문에’는 6.7%로 나타났으며, ‘친인척들에게 과시하기 위해’라는 응답도 5.9%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부장적인 부모세대가 가족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훈육에 대해 헌신하고 수용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이젠 친밀감과 동등한 관계가 우선시 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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