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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자 골탕 먹이는 규제들②] 분통 터지는 통장만들기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신혼인 직장인 A씨는 부부 공동 생활비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한 은행을 찾았다. 재직증명서를 내밀고 생활비 관리 목적 수시입출금식 통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니 “급여통장이 아니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창구 직원은 “관리비나 공과금 납입고지서를 챙겨오라”면서 하루 100만원 이하 인출만 가능한 소액통장 개설을 제안했다. A씨는 “다른 은행은 첫 거래인데도 재직증명서와 명함만 제출했더니 사정을 봐주더라. 은행마다 일일이 알아봐야 하나”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시중은행들이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통장 개설 기준을 강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선의의 피해가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지난 2015년 말부터 금융사기 피해예방을 위해 신규 계좌 개설 목적에 따라 금융거래목적확인서와 증빙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계좌 목적은 급여, 법인, 모임, 아르바이트, 연구비 등 9개 항목으로 세분화됐으며 필요한 서류는 목적에 맞게 달라진다.

언뜻 대포통장 감소 효과가 있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대포통장 발생건수는 2만1555건으로 2015년 하반기(2만2069건)에 비해 2.3% 감소했다. 개설요건이 강화된 은행권역 대포통장 발생(1만5932건)이 전기보다 5.3% 줄었다.

그런데 은행과 달리 상호금융권 대포통장 발생(3173건)이 전기 대비 13.4% 급증한 데다 신규계좌 대신 기존계좌를 대포통장으로 이용하거나 유령법인 명의를 활용하는 일이 늘어났다. 구직자 대상으로 대포통장을 모집하거나 법인통장을 만들면 수수료를 지급하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하는 등 범죄수법도 진화했다. 인터넷에서는 ‘법인통’, ‘법인장’ 등 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거래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은행 문턱을 넘기 위한 각종 꼼수가 등장하며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은행 이용이 힘들어진 선의의 금융소비자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다. 주부, 학생 등 소득증빙이 어려운 소비자들은 “종잣돈을 모으기 위한 ‘통장 쪼개기’조차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주부도 통장 만들어 주는 은행을 알려달라”, “증권사 CMA 통장은 낫냐” 등 ‘통장 난민’ 관련글이 올라오고 있다.

뿔난 소비자들을 응대해야 하는 은행 직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장 개설이 거부된 고객들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강하게 항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불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을 양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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