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새해에 멋지게 보이고 싶으면
얼마 전, 고가 차도의 철거로 아현동 지역은 그 시야나 도로가 한층 넓어졌다. 뉴타운 개발이 한층 진행 중이어서, 북아현동으로 들어가는 길의 왼편에는 수 천 가구가 들어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고 있다. 반면에 오른편은 재개발과 무관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정겨운 풍경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를 달려갈 때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주 현대적인 건축물이 치솟은 시공간과 과거의 오래된 건물들이 낮게 웅크리고 있는 시공간이 양옆으로 날개처럼 펼쳐진다. 마치 컬러 영화와 흑백 영화 사이를 동시에 보는 느낌이다. 언제고 시간이 날 때, 두 공간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선 산책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를 맞았다. 날씨가 추워서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커피 캔을 하나 사기 위해 작은 상점에 들어갔다. 계산을 막 마친 여주인이 “참 멋지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솔직히 그런 표현을 들을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젊음이 주는 생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는 모자를 쓰거나 길게 스카프를 걸치고 나가는 패션 스타일 때문에 작가적인 느낌이 있다는 말을 가끔 듣곤 했다. 하지만 방학이어서 온전히 긴장이 풀린 옷차림에, 추울까봐 보풀이 무성한 머플러로 감싸고, 화장기도 없어 푸석푸석한 얼굴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구석이 전혀 없었지만, 참 오래간만에 들으니 반갑기도 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요즘 누가 책을 손에 쥐고 다니나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매우 멋지세요!”
건너편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지역으로 가보려던 생각을 버리고 오른편 골목길을 계속 걸었다. 과거에는 요즘처럼 대학에 개인 사물함이 없어 학생들은 그날 필요한 교재를 가방에 넣어 다녔다. 하지만 가방에 다 들어가지 못하는 큰 책이나 무거운 책은 손에 한두 권씩 들고 다녔다. 외국어를 전공한 필자도 두꺼운 사전은 가방에 넣고 큰 책은 거의 손에 들고 다니면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E 대학교 학생들은 멋 내려고 책의 표지 색깔을 옷 색깔에 맞추어서 들고 다닌다.”라고 애매한 소리들을 주변에서 했었다. 당시에는 속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손에 책에 들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멋이 있었는지 새삼 알 것 같다. 요즘은 멋으로라도 손에 책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북아현동을 대강 한 바퀴 돌고나니, 오른편을 그대로 남겨 놓아 왼편의 뉴타운과 극렬한 대비감을 유지한다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멋진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작가적인 상상력이 불쑥 올라왔다. 물론 시간과 함께 오른편도 변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왼편의 현대식 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기자, 오른편의 작고 낡은 건물들이 묘하게 새로운 멋을 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있을 때 책을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달라보였던 것과 비슷한 것일까. 그런데 산책 나가면서 왜 책은 들고 나갔지만 모르겠다. ……뭐, 여하튼 결론은 새해에 멋지게 보이고 싶거든 우선 손에 책을 들라는 것이다. 겉멋이라도 말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