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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유동성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돈 돌게할 방안 찾아야
시중에 풀려 유통되는 현금의 총량을 의미하는 화폐발행잔액은 작년 말 현재 97조4000억원이다. 1년새 10조6000억원, 10% 이상 늘어났다. 현금뿐 아니라 예금잔액 등을 합친 광의통화(M2)도 2400조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불과 2~3%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이 돌지를 않는다. 본원통화가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게 통화승수다. 지난해 통화승수는 16.7로 역대 최저다. 10년 전만해도 25를 넘어 30까지 바라보던 수치다. 매년 1~2씩 떨어져 이렇게 됐다.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 사용됐는지 가늠하는 수치가 통화유통속도다. 90년대엔 1.5에 달하던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근 1년 이상 0.7 수준에 머문다. 예금회전율도 3.8회에 불과하다. 돈을 풀어도 은행에 되돌아와 고여버린다는 의미다.

심지어 돈이 제대로 돌지않는 상태를 넘어 아예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작년 1년간 5만원권 발행량은 23조원으로 2009년 발행 후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수된 건 11조원뿐이다. 절반이 넘는 12조원은 금고속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미국이나 EU의 100달러, 500유로 고액권의 회수율이 70~9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돈맥경화’ 현상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심각한 돈맥경화에 빠진 원인은 여러가지다. 복합적이다. 우선 국민소득 증가속도가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더 버는 돈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무리 돈을 풀어도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는다.

돈은 경제의 피다. 빠르게 순환돼야 건강한 경제다. 금리를 내리고 통화 공급을 늘리면 총수요가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가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얘기다. 그건 경제의 중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과 실물의 연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시중에 크게 늘어난 돈이 투자와 소비로 흘러들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넘치는 건 덜어내고 없는 건 찾아내야 한다.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유효 수요를 만드는 일이다. 기존 생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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