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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자살보험금에 대한 불편한 시선
혜전탈우(蹊田奪牛).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그 소를 빼앗는다는 뜻으로, 지은 죄에 비해 처벌이 혹독함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보험업계 핫이슈인 자살보험금 논란을 지켜보다 떠오른 고사성어다.

원죄는 분명 보험사들이 저질렀다. 지난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일본 보험 상품의 약관을 베껴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자살을 재해사망 특약에 포함시켰다. 어처구니없게도 ‘빅3’(삼성한화 교보) 등 다른 생보사들도 같은 약관을 복사해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재해사망은 일반사망 보다 보험금을 2~3배 더 줘야 한다. 생보사들은 법정으로 끌려나왔고 지난해 5월 대법원이 “단순 실수 맞지만 그래도 약관대로 주라”는 판결을 내자 비상이 걸렸다. 재해사망 특약에는 생보사 14곳에 285만명(2001~2010년)이 가입한 상태였고 자살보험금 미지급 규모는 빅3만 따져도 현재 3700억여원에 이른다. 깨알글씨 약관 한 줄 실수가 산더미같은 재앙을 몰고온 셈이다.

자살과 재해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정설이다.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이라는 것이다. 인적 손해의 분류상 자살(고의적 생명절단)과 재해(의외의 사고로 인한 신체손상)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어서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 일반사망보다 2~3배 더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자살장려금을 얹어주는 격이다. 단순 자구실수의 대가로 수천억원을 퍼줘야 한다면 그 피해는 다수의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는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지 모른다.

자살에 재해보험금 지급이 이치에 맞지 않다면 가입자의 수익은 부당이득이 되는 셈이다. 문제가 된 재해사망특약에서 보험사들은 자살을 보험사고에 포함시키지 않아 이에대한 보험료를 전혀 받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가입자는 아무런 대가 없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게 되니 ‘공돈’이 생기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약관내용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다. 또 2007년 대법원 판례가 나온지 무려 7년이 지난 2014년에야 생보사를 상대로 첫 지급권고 행동에 나섰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

금융당국이 인허가 취소, CEO(최고경영자) 해임권고 같은 철퇴를 들자 보험사들이 마지못해 반응하기 시작했다. 중소형 생보사는 백기를 들었고 빅3는 배임의 덫을 피해가려 위로금이나 자살방지재단 출연 형식을 취하는 등 살얼음을 걷는 모양새다.

자살재해보험금은 황당한 자구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성 사안이다. 그런데도 ‘공돈’을 받는 수익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선량한 다수 보험 가입자의 박탈감은 커진다. 헤전탈우의 고사성어에 등장하는 소 처럼 보험사가 무심코 남의 밭을 지나가는 잘못울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일을 못하게 소를 빼앗으려 하는 것(인허가 취소 등 중징계)은 가혹하다. 보험사ㆍ가입자ㆍ금융당국 3자가 합리적 절충점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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