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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박 대통령과 변기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때 얘기다. 시골을 떠나온 외할아버지는 큰 외삼촌과 살게됐다. 시골 집을 정리하고 장남 집에서 기거하게 된 것이다. 평생 두메산골을 벗어난 적이 없던 외할아버지는 도시생활에 무료해 하셨다. 가끔 역에 나가 노인분들과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세월을 보내셨다.

어느날, 외할아버지는 큰 외삼촌 집을 떠나 혼자 사시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곤 조그만 단칸방을 얻어 진짜로 홀로 생활했다. 막무가내였다. “뭔가 크게 불편하시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언젠가 외할아버지에게 살짝 여쭤봤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다. “어디 며느리가 엉덩이 댄 곳에 엉덩이를 대고 살아?”

변기 얘기였다. 큰 외삼촌도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서 화장실은 한곳 뿐이었다. 그러니 화장실 변기도 당연히 하나였다. 외할아버지 말씀은 “며느리가 엉덩이를 대고 볼일을 본 다음, 시아버지인 내가 어떻게 똑같은 변기에 엉덩이를 대고 일을 보겠느냐. 그게 힘들어서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이해할 수는 없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전 “(내가) 인천시장 시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인천에 들렀고 화장실 변기를 뜯어가더라”고 말했을때 옛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왜 일까.

송 의원 얘기는 이랬다. 송 의원이 인천시장일때 박 대통령이 국정간담회를 위해 참석했는데, 대통령이 쉬셔야 하니까 시장실을 빌려달라고 해 빌려줬더니 비서가 와 변기를 뜯어가더란다. 이유를 알고 나니 황당했단다. 송 의원은 “내가 쓰던 변기를 못쓰겠다 이거였지요. 그래서 새 변기를 설치하더라”고 했다. 그는 한술 더떠 “소독하고 닦던지 깔개를 깔면 되지 변기까지 뜯어갈 일인가”라고 했다. 송 의원이 박 대통령을 가르켜 ‘변기 공주’라고 해 그냥 웃음으로 지나갔지만, 참으로 복잡한 생각을 갖게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오버랩되면서 박 대통령의 권위철학(?)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어서 더욱 착잡했다.

사정은 다르지만, 사실 내 딸도 그랬다. 딸 아이가 중학생때 였을게다. 학교 후 집에만 들어오면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하는 일이 빈번했고, 그게 하도 이상해 아내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학교 화장실에선 일을 볼 수가 없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화장실이 아무래도 지저분하니까) 요즘 애들 다 그래”라고 했다. “계속 그러면 변비 걸린다”며 딸에게 학교 화장실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를 10가지 이상을 대며 설득했던 것 같다. 얼마후 딸은 학교 화장실을 쓰게 됐지만, 세대차이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딸에게 학교 화장실을 쓰게끔 강제(?)한 것은 그래야 정상적인 어른으로 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학교 화장실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험한 삶의 통과 의례, 평등, 인내, 남에 대한 배려, 소통과 동질감 같은 것이고, 내 딸 역시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믿었다.

박 대통령의 ‘변기관’은 그래서 안타깝다. 외할아버지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동료 엉덩이가 닿았던 사무실 변기를 하루에도 몇번씩 쓰는 직장인을 박 대통령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 불통과 실정(失政)의 출발점은 어쩌면 변기였는지 모른다고. y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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